가을볕이 한창 따사로운 날. 서울 목동 정목초등학교는 운동회 준비로 들썩이고 있었어요. 4학년 3반 40명의 어린이는 운동회 준비로 들떠 있지만 짬을 내 엄마 아빠께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를 썼어요.
담임선생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편지지에 연필로 꼬옥 눌러 정성껏 글을 썼지요.
엄마 아빠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들 머리 맡에서 정성껏 답장을 써 주셨어요.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어린이들이 어떤 불만을 마음 속에 숨겨두고 있었는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먼저 3반 어린이들의 편지를 살짝 엿볼까요?
# 엄마 아빠 잔소리.꾸중은 이제 지겨워요.
"엄마는 왜 제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공부하라 그러시고, 영어 듣고 있어도 영어 들으라고 하세요?
정말 서운해요. 열심히 하고 있는데…. "
"엄마, 잔소리 좀 그만 하셨으면 해요. 요즘엔 회장을 하라고 잔소리처럼 하셨는데, 출마도 안해서 속상하셨죠? 그렇지만 전 자신이 없었어요. "
"엄마가 자꾸 저를 친구와 비교할 때는 저를 왜 낳아서 그러시나 생각하게 돼요. 정말로 도망쳐서 크게 울고 싶어요. 저도 제 친구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며 공부하지만 저는 그쪽으로 타고난 게 아닌가봐요. 이제는 제발 친구와 비교하지 말아주세요. "
"아빠는 왜 매일 저를 울리세요. 제가 잘못한 게 있을 때마다 언성부터 높이시잖아요. 저는 그렇게 울 때마다 정말 아빠께 실망한답니다. "
*** 아빠는 왜 세수 않고 주무세요
#엄마 아빠, 잔소리 좀 안하게 잘 하세요.
"엄마!
약속 좀 지키세요. 1999년에 칼라 게임보이랑 팩을 사준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2001년이란 말이에요. 아빠도 좀 일찍 들어오세요. 매일 새벽에 들어오시고 저녁에 계실 때도 매일 신문하고 TV만 보시잖아요. 저랑 공기놀이도 하고 재미있게 게임도 하고 놀아 주시면 좋겠어요. 술.담배도 좀 줄이세요. 어렸을 적부터 말씀 드렸잖아요. 저 벌써 열한살이에요. 몇년 째예요?
이젠 줄이세요!
살도 좀 빼세요. 엄마는 반대로 살 좀 찌세요. 저한테는 편식하지 말라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
"아빠는 왜 세수도 안하고 그냥 주무시는거예요? 저한테는 매일 이닦고 자라고 하시잖아요. 또 제발 양말 좀 뒤집어서 아무데나 벗어놓지 마세요. 엄마가 빨래할 때마다 투덜거리시잖아요. "
"저희 보고는 싸우지 말라고 하시면서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자주 싸우세요? 얼굴도 자주 못보는데 웃으면서 화목하게 좀 살아요. 저희가 뭘 보고 배우겠어요?"
*** 강아지 못사주시면 동생이라도…
# 엄마 아빠, 제 소원 좀 들어주세요.
"엄마 아빠, 저 지금 태권도하고 재능 학습도 하잖아요. 그런데 속셈학원에 가고 싶어요. 요즘 집에서 공부하기가 싫어요. 언니가 학원에서 공부하니까 저도 학원 다녀서 언니처럼 아빠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 잘난 척 좀 합시다. 네?!"
"학교에서도 공부 열심히 할 건데요…. 제발 컴퓨터 사주시고 용돈 좀 올려주세요. 아셨죠?
그러면 오락을 많이 안할 거 아니예요. 매일 게임방에 간다고 혼내지 마세요. "
"소원이 하나 있는데요…. 저번에 공원에 갔을 때 사람들이 거의 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있더라구요. 너무 부러웠어요. 나중에라도 꼭 사주세요. 아빠가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예방주사 맞히면 되잖아요. 예전엔 강아지가 무서웠는데 요즘엔 너무 귀여워요. 강아지 안 사주실거면 동생 하나 낳아주세요. "
이경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 아빠의 변명
"아빠가 같이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 못지 않지만 그렇게 못해줘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아빠도 가끔씩 네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 땐 너무 힘이 든단다. 너희들을 위해 바쁘게 일하는데, 그 시간만큼 너희들과 멀어지기만 하는구나. 아빠를 많이 도와주렴. "
*** 엄마의 변명
"자꾸 잔소리하고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 얼굴 보는 것보다 컴퓨터 게임 하는 걸 더 좋아하는 너에게 섭섭할 때가 많아. 사춘기가 되면 얼마나 더 심할까? 아무래도 동생 하나 낳아야겠어. 짜증만 내지 말고 엄마를 따뜻하게 대해 주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