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공짜표 관객' 한명 없는 일본 공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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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연극.무용.음악 할 것 없이 우리 공연계의 공짜표(초대권) 범람 이야기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너무나 고질적이어서 아예 관습이 된지 오래다.

이런 관행의 발생 요인은 공급자(예술계)와 수요자(관객) 모두에게 있다. 공급자들은 관객이 없으면 안되니, 우선 객석을 채우고 보자는 생각에서 공짜표를 돌렸다. 그러니 수요자는 수만원하는 비싼(보통 7천~8천원하는 영화를 생각해 보라) 관람료를 굳이 내고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 것에 현혹되는 관객의 의식이 문제이긴 하지만, 공급자들의 그릇된 판단이 그런 관행을 고착시켰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이러는 사이 정작 예술활동의 본령은 왜곡됐고 시장은 낙후됐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동안 개혁 움직임도 없지 않았다. LG아트센터는 지난해 개관이후 '무공짜표'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제는 정착 단계에 있다는 게 이곳 직원들의 설명이다. 관행을 거부한 모험이 성공한 것. 관객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본보기가 될 만한 일본 이야기를 해본다. 지난 주말 기자는 도쿄에서 연극 한편을 보았다. 임영웅씨가 연출한 일본 청년극장의 '감사합니다' 였다.

공연장은 웬만한 지명도가 없으면 대관조차 힘들다는 연극 명소인 신주쿠의 기노구니야(紀伊國屋)홀. 5백석 극장은 만원이었다. 그런데 관객 중 공짜표로 들어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공연이 있으면 단원들은 할당받은 티켓을 기를 쓰고 팔러 다니는데, 못팔면 그만이지 공짜표로 관객을 불러오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관객들의 태도였다.

극장 홍보담당자는 "일본의 관객들은 공짜표로 공연을 보는 것을 일종의 수치로 여긴다" 고 말했다. 평론가나 담당 기자도 공연장에 와서 공식적으로 지정된 티켓 한장(두장도 아닌)을 받아서 봐야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일전에 만난 한 극단 홍보 담당자의 볼멘소리도 생각났다. "버젓한 직장이 있어 여유가 있을 법한 평론가들조차 아무때나 공짜표를 요구고, 주어도 막상 오지 않아 골치 아프다. "

관객들이 공짜표를 수치로 생각하는 '문화의 시대' 가 우리에겐 언제나 올까.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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