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연예인 60% 성접대 제의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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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기획사 대표가 옷을 실컷 사주고 저를 집에 데려다 주는 줄 알았는데 모텔로 데려가더라고요.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이쪽 일을 하려면 네가 세상을 더 알아야 되고 남자도 알아야 돼’라고 말해 싸웠어요.”(20대 중반 여성 연기자 A씨)

여성 연기자 10명 가운데 6명은 사회 유력 인사 등으로부터 성접대 제의를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의 ‘여성 연예인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응한 여성 연기자 중 60.2%가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31.5%는 가슴과 엉덩이·다리 등 신체 일부를 만지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직접 성관계를 요구받은 연기자도 21.5%로 조사됐다. 성폭행과 같은 명백한 범죄로 피해를 본 연기자도 6.5%에 달했다. 성접대를 제의한 상대는 재력가, 감독, 제작사 대표, 광고주, 정·관계 인사 등으로 다양했다.

몸의 특정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 등 언어·시각적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한 연기자도 58.3%로 조사됐다. 64.5%는 불편한 성적 농담을 들었고, 67.3%는 몸이나 외모에 대해 평가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45.3%는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의 절반가량(48.4%)은 제의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도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 연기자 지망생들의 72%가 다이어트를 권유받았다. 소속사에서 성형수술을 강권당했다는 연예인 지망생은 전체의 58%에 달했다. 20대 초반의 연기자 지망생 C씨는 “저는 외모가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언제 (성형)할 거냐며 너무 닦달해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인권위의 용역을 받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여성 연기자 111명과 연기자 지망생 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작성됐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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