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빠진 스타 ② 연기자 이인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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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석호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이인혜씨는 대학원생과 연예인 출신 최연소 교수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김진원 기자]

16일 오후 3시30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 이씨의 손엔 언론학 관련 서적이 들려 있었다. “미용실에서 머리 하면서 잠깐 본다는 게 여기까지 들고 왔네요. 지난해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틈틈이 책을 보지 않으면 수업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이씨는 1991년, 초등학교 4학년 때 MBC 어린이 합창단에 뽑히며 연예계에 첫발을 디뎠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어린이 프로그램 MC와 각종 CF, 드라마 촬영 때문에 1주일에 한두 차례밖에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 연예인이 돼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어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 과학기술처장관상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스케줄에 쫓겨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성적이 떨어지더군요. 1학년 말에는 반에서 12등까지 추락했죠.” 성적을 본 어머니 임영순(58)씨가 “방송 일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때 이씨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이동시간과 대기시간을 활용해 차 안에서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다. EBS 교육방송을 녹음해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들었고, 목표량을 정해 영어단어를 외웠다. 시끄러운 촬영장에서는 수학문제를 풀었다. 밥 먹을 때와 잠을 잘 때도 이어폰을 꽂고 영어테이프를 들었을 정도다. “영어단어를 하루에 3개씩만 외워도 한 달이면 100개를 외울 수 있어요. 자투리시간 몇 분 만 제대로 활용해도 그 시간이 모이면 공부량은 엄청나죠.”

자투리시간 활용 공부법은 중학교 때까지는 통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공부할 분량이 늘어나 한계에 부닥쳤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연기자는 제 직업이고, 직업은 평생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공부는 때가 있다고 생각했죠. 학생 때 아니면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요.” 사실 그에게는 ‘아역배우 출신들은 공부 안 해도 대학 간다’는 편견을 없애 버리고픈 소망이 있었다. TV 프로그램 1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방송을 접었다.

이씨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과목별로 공부할 목표량과 쉬는 시간 동안 해야 할 공부 범위를 적은 1일 계획표를 만들었다. 오후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했고,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했다. “전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에요. 하지만 오기와 끈기는 있어요. 계획표대로 실천하지 못한 날은 밤을 새워서라도 다 하고 잠이 들었으니까요.” 과천여고 550여 명 중 전교 5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공부 실력으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총학생회 간부와 동아리·학회활동 등 남들이 하는 대학생활은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이씨. 그러다 대학 3학년 때 지도교수와 상담을 하면서 “실무경험과 지식을 겸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방송을 몸으로 익혔다고 생각해요. 이론까지 공부한다면 괜찮은 선생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택한 길이 대학교수다.

지난해 3월부터 그는 한국방송예술종합학교에서 방송연예탤런트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씨는 여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 또 한번 도전을 준비했다. 같은해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해 언론학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려운 연기자와 교수, 학생의 신분을 모두 가진 이씨. 지금의 그가 존재하는 건 마음에 새겨진 좌우명 때문일지 모른다. “‘10년 후를 그리기보다 오늘 하루만큼은 후회 없이 산다’는 게 제 목표입니다.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는 시간에 내 자리에서 묵묵히 내 일을 하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씨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학생들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피하지 마세요. 부딪쳐 이겨내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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