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남북 장관급 회담 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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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테러 참사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16일 막을 올린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은 일단 순항(順航)하는 모습이다.

4차 회담 이후 9개월간의 밀린 현안을 풀려는 듯 남북 양측은 이날 오전 1시간10분 동안 첫 전체회의를 한 데 이어, 낮 12시부터는 홍순영(洪淳瑛.통일부장관) 남측 수석대표와 김영성 북측 단장이 30분 동안 단독접촉을 했다. 대표간 막후 접촉도 심야까지 이어졌다.

특히 북측 金단장은 전체 회의장에서 ▶경의선(京義線)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전력 제공 등 무려 11가지 의제를 들고나왔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이 이처럼 '백화점식' 제안을 해온 것은 이례적" 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경의선 연결▶금강산 육로관광▶이산가족▶개성공단▶임진강 수방대책 등 다섯 가지 의제는 남측도 제기해 타결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3~5개 의제가 겹쳤다" 고 말해 회담이 탄력을 받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측의 제안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전력지원 문제다. 우리측 회담 관계자는 "북측 제안의 앞부분 세 가지(경의선 연결.개성 공단 건설.임진강 수방대책)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거의 이견이 없는 만큼 북한은 실제로 전력문제를 가장 앞세운 셈" 이라며 "북한은 슬쩍 끼워넣은 듯한 전력문제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고 풀이했다.

4차 회담 때 자신들의 실질 발전설비 용량과 맞먹는 2백만㎾의 전력 지원을 요청했다가, 나중에 급한 대로 50만㎾만이라도 달라고 했던 북한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온 것은 극심한 전력난을 어떻게든 풀어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양측은 지난 2월 첫 전력 협력 실무협의회를 열었으나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먼저 하자는 남측 제안과 '50만㎾ 지원을 전제로 한 제한적 조사' 라는 북측 주장이 맞서 협의가 중단됐다.

하지만 임동원(林東源)전 통일부장관 해임안 가결 여파로 대북 포용정책의 틀을 가다듬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제기된 전력지원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은 단호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전력은 쌀이나 비료 지원 등 인도적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실태조사 등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고 못박았다. 남북한이 18일 발표할 합의문 내용은 17일 밤 막판 절충에서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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