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중시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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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해인사 청동대불 사건의 중심에 섰던 수경(收耕.52)스님이 지리산 실상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단식을 끝내고, 단식보다 더 조심스럽다는 회복식(回復食)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불교환경연대' (http://www.buddhae.co.org)가 출범하는 날(지난 6일)이라 상경했다. 환경연대는 불교계 여러 환경단체와 전국 사찰을 하나로 묶는 최초의 조직. 수경 스님은 공동대표 자격으로 행사장인 조계사 문화관 입구에서 손님을 맞았다.

"힘은 들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요. "

핼쓱한 얼굴, 마주 잡는 손에 느껴지는 기운이 예전같지 않다. 행사가 끝난 뒤 조계사 옆 환경연대 사무실로 옮겨 마주앉았다. 앉자마자 냉수부터 찾는다. 물과 죽 이외의 다른 음식을 아직 먹지 못한다. 3주간의 단식으로 10여㎏이 빠졌다.

회복식에 들어간 지 한달이나 됐는데 5백g정도밖에 체중이 돌아오지 않아 주위에선 걱정이 많다. 그렇지만 수경 스님 본인은 "이미 오래 살았다" 며 괘념치 않는다. 시원한 이마의 주름살은 더 굵어졌고, 얘기 중에 자주 양미간을 찡그린다.

"해인사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고…, 그것보다도 환경문제가 더 중요하지. 청동대불도 크게 보면 다 환경과 연관된 문제고. "

해인사 얘기보다는 환경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목소리는 아직 단단하다. 마음 먹으면 바로 행동으로 들어가고, 모든 행동엔 확신이 넘쳐 보이는 선승(禪僧)의 괄괄한 성정은 여전하다. 환경 얘기를 하다보니 점점 힘이 나는 듯 했다.

"부처님이 바로 환경운동가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不二)는 가르침, 삼라만상이 모두 한 생명이라는 가르침, 불교는 온통 환경과 생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그간 우리 불교는 환경.생명의 문제를 간과해왔어요. 이제 그 가르침을 본격적으로 실천하자고 모임을 만드는 겁니다. "

할 일은 태산같다. 우선 이번달 중으로 백두대간을 답사하는 조사단을 파견한다. 신흥사를 중심으로 한 설악산 일대,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오대산 일대 등 주요사찰 주변의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의 실태를 먼저 파악하자는 취지다.

이어 주요 사찰을 연결, 전국의 주요 자연환경을 불교연대의 네트워크 속에 담아 각종 현안이 생길 때마다 적절히 연대해 대응한다. 동시에 불교계의 환경.생명 연구자들로 연구소를 만들어 운동의 이론과 대중적 논리를 개발한다. 한반도의 산과 들, 강을 모두 아우르고도 남을 포부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6일 환경연대 창립총회에는 전국본사주지연합회 회장 법장(수덕사 주지)스님 등 교계의 중진들이 대거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제는 스님들도 환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곳곳에서 개발문제에 부닥치고 있으니까요. 이미 대부분 본사 주지급 스님들은 우리의 취지에 공감하고 협력키로 했습니다. 남은 문제는 그런 관심을 개인 사찰의 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높은 생명 사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

그런 측면에서 수경 스님은 사찰과 승려들의 구조조정, 슬림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찰의 살림이 흥청망청하고, 승려들의 생활에 기름이 흐를 때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실천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이 곧 불교계의 개혁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수경 스님 본인의 결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7세에 출가해 35년을 선방에서 수행만 하며 살아왔다. 지난해 "죽음을 외부에 알리지 말고, 49재도 지내지 말라" 는 말을 남기고 열반한 응담(應潭)스님의 깐깐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럼에도 수경 스님 스스로는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못했다" 고 참회한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보다 정직하게 살아갈 길" 을 찾았다고 한다. 바로 환경.생명운동이다.

오병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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