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곡가들] 김진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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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990년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양과 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는 젊고 역량있는 작곡가들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대부분 프로듀서를 겸하는 이들은 미국·유럽 등 대중음악 선진국들의 최신 경향과 각종 기법을 과감히 수용해 한국적으로 발전시켰다.

최근 거센 한류(韓流)돌풍의 진원지도 따지고 보면 이들이 발전시킨 대중음악이다.한국 대중음악을 아시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젊은 작곡가들로부터 대중음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해부터 특히 돋보이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진권씨는 1966년생. 경희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했다. 핑클의 '나우' , 샵의 '잘됐어' , 유승준의 '찾길 바래' , 신화의 '올 유어 드림스' , 맥스플라이의 '스타즈 인 더 스카이' 등이 그가 만든 곡들이다.

이 가운데 김씨 스스로도 자신의 음악적 지향을 가장 잘 구현한 곡으로 꼽는 '스타즈…' 는 그의 음악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노래다. 신인 그룹 맥스플라이를 단번에 유명하게 만든 이 노래는 이른바 보이스 패드 팝.

멤버들이 노래의 부분 부분을 따로 따로 불러 녹음한 목소리를 한데 모아 선명하고 힘있는 보컬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사용한다.

요즘 인기 팝스타들, 특히 엔싱크.웨스트 라이프.백스트리트 보이스 등 보이 밴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가창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단번에 귀에 와닿는 노래를 만들 수 있지만, 일반적인 작곡 능력은 물론 믹싱과 엔지니어링 기술에 통달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기법이다.

김씨는 이런 최신 팝 기술을 완전히 소화해 대중음악 관계자들이 흔히 '뽕끼가 섞였다' 고 말하는 트로트적 요소가 섞여있는 기존 댄스곡들과는 차별화된 고급스러운 댄스곡을 만들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나훈아씨 빼고는 한국 가수들이 모두 김진권씨에게 곡을 요청했다" 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그의 인기는 절정이다.

"저는 음반을 만들 때 하나의 대형 컴퓨터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합니다. 이제 대중음악의 첨단에 있는 작곡가는 단순히 오선지에 곡을 쓰는 수준에서 벗어나 일종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적 영감 못지 않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기술적 숙련이 필요하죠. "

그는 "대중음악은 상업적이어야 한다" 고 당당히 말한다.

"앨범을 만들 때 제작자의 입장에서 우선 생각합니다. 당연히 상업성과 대중성이 없는 대중음악을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 대중이 보다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죠. "

김씨는 오는 11월 미국에 사무실을 내고 팝의 본고장에 도전한다.

"일본에는 제가 직접 앨범을 제작하는 보이 밴드로 도전장을 내고, 미국에서는 곡을 만들어 유명 가수들에게 줄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

최근 4인조 보이 밴드 위즈를 선보인 그는 곧 여가수 채정안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노래를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최재희.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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