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 대전] 대한항공기 2대 격추될 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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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내 테러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11일 미국으로 향하던 한국 항공기 두대가 자칫 미군측에 의해 격추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것으로 오인되면서였다.

첫 상황은 승객 1백95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출발, 경유지인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접근하던 뉴욕행 대한항공 085편에 일어났다.

"교신 채널을 하이재킹(공중납치) 코드로 변환하라" 는 앵커리지 관제소의 난데없는 지시가 떨어진 것. 항공기가 하이재킹 코드를 입력하면 관제 레이더에 '납치된 비행기' 라는 표시가 뜨게 된다.

당황한 기장이 "무슨 소리냐. 무슨 사고라도 났느냐" 고 묻자 관제소는 "납치당하지 않았느냐" 고 되물었다. 객실에 테러범이라도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찔해진 기장은 긴장 속에서 비행을 해야 했다.

잠시 후 캐나다 공군기가 접근해 왔다. 기수를 돌리라는 공군기의 명령에 따라 30여분의 비행 끝에 캐나다의 화이트호스 공항에 강제 착륙한 뒤에야 085편은 '피랍 여객기' 가 아니라는 오해를 풀었다.

그 무렵 인천공항을 떠나 워싱턴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93편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관제탑으로부터 회항하라는 지시를 받고 U턴해 미니애폴리스 공항에 착륙해야 했다.

이 사실은 14일 미국 부시 행정부의 신임 합참의장 지명자인 리처드 마이어스 공군대장에 대한 상원 공사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뉴욕과 워싱턴을 겨냥한 테러 공격에 대한 대응을 묻는 의원들에게 그가 털어놓은 것.

딕 체니 미 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테러 직후 4대의 민간항공기가 워싱턴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이 항공기들이 테러에 이용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없었다" 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우에 따라선 격추나 비상착륙을 유도할 의사도 있었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인천공항 보안당국도 "대한항공기가 납치됐다" 는 소식을 전해 듣고 초긴장 속에서 사태를 지켜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나중에 앵커리지 관제소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았다" 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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