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복 다가왔다" 아랍권 교민 초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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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공격을 위해 개전(開戰)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14일 저녁 파키스탄 남부도시 카라치.

삼성물산.현대종합상사.㈜대우 등 20여개 국내 상사 임직원들이 모였다.

아프간 접경 국가에 거주하고 있어 미국의 공격과 아프간의 응전으로 혹시 피해를 보지 않을까 우려해 긴급대책회의를 가진 것이다.

일본무역진흥회(JETRO)사무소.미쓰비시(三菱)상사 등 현지 일본기업 종사자들은 이날 밤 철수를 시작했다.

미국의 전쟁 선언으로 아프간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도 전운이 감지되면서 우리 교민과 상사 주재원들은 생필품을 비축하고 외출을 삼가는 등 긴장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또 현지 한국공관들은 교민들의 비상연락망을 점검하고 있으며, 일부 친(親)아프간 국가에서는 대피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 외출금지.사재기=파키스탄에서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미국의 보복공격에 협조하겠다' 고 천명한 후 한인들이 외출을 삼가고 있다.

국제전화로 연결된 한 상사직원은 "미국편을 드는 정부에 대한 이슬람 극렬세력의 반감이 외국인들에 대한 테러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며 "반(反)서방 감정도 전에 없이 거세져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 고 말했다.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은 교민들에게 훈사.퀘타 등 아프간 접경지에 대한 여행금지령을 내렸다.

대사관 관계자는 "미국 테러 직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의 미국인 학교들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며 "전세계 취재진이 몰려드는 등 전쟁전야" 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 삼성물산 고준(44)지점장은 "1백여 교민.상사 주재원들이 은행에서 달러를 비상금으로 찾고, 생수와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있는 모 기업 주재원도 "이곳 정부가 외국인들을 상대로 도.감청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며 "전쟁이 터지면 외국인들에 대한 테러가 있을 것이란 소리가 들려 흉흉한 분위기" 라고 말했다.

◇ 대피 준비=미국으로부터 '불량 국가' 로 지목된 시리아 거주 국내 상사원들은 14일 지하실에 긴급 대피소를 마련하고 위급상황 발생시 이웃 터키로 피신할 계획을 세웠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삼성물산지사 성영욱(43)부장은 "상사 직원 가족 등 열세명의 한인들이 인근 레바논 주재 한국대사관과 비상연락을 취하고 있다" 고 밝혔다.

최근 이스라엘과 수교한 요르단의 교민 1백49명도 아랍권의 테러를 우려해 외출을 삼가고 있으며, 일부는 긴급상황에 대비해 집단탈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현지 교민은 전했다.

◇ 아프간=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의 정순석 참사관은 "올 초까지 아프간에 교민 10여명이 드나들었지만 현재는 한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측은 1995년부터 아프간으로 출국한 한국인이 2백53명(올해 63명)이라고 밝혀 일부가 현지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성호준.조민근.손민호.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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