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영공 통과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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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에 대한 동시 다발 테러는 남아시아의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사건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파키스탄과는 거리를 두고 인도와의 관계를 대폭 강화해 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일방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후 파키스탄을 후원해 온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인도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를 고려해 왔다.

또 중국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략적 파트너로 인도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새 서남아시아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비행기 돌진 테러의 핵심 배후인물로 오사마 빈 라덴이 지목되고 그를 비호해온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보복 공격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태도가 확 바뀌었다.

내륙 오지에 위치한 아프간과 빈 라덴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유일한 접근 루트인 파키스탄으로부터 영공 통과와 보급로 및 지상군 진입로 제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3일 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반격에 파키스탄의 '전면적 지원(full support)' 을 요청, 긍정적 답변을 얻었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요구 조건을 들고 탈레반과 협상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는 14일 "파키스탄측은 미국이 군사공격을 할 때 육로를 제외한 영공 통과를 일단 약속했다" 고 보도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파키스탄과 탈레반을 분리하려는 전략이 최종 성사될 경우 이 지역의 정세는 급변할 전망이다.

파키스탄이 '이슬람 형제국가' 인 탈레반과의 관계를 깨면서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결국 동조한다면 이는 미국의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미국의 급속한 밀착은 결과적으로 인도에 정치적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

인도에서는 13일 빈 라덴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면서 그의 대형 사진을 불태우는 시위까지 벌였으나 파키스탄으로 쏠린 미국의 눈길을 돌리지는 못했다.

미국과 인도 관계는 당분간 서먹해질 전망이다. 반면 중국도 우방인 파키스탄이 지나치게 미국과 가까워질 경우에 대비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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