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박정환 2군서 캐낸 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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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 9일 목동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당시 프로축구 1위 안양 LG와 2위 성남 일화의 맞대결.

전반 일찌감치 선취골을 내준 안양은 후반 중반이 지나면서 패색이 짙어갔다. 관중들마저 하나씩 짐을 챙기던 순간 성남의 골네트가 출렁거렸다. 안양의 '신인급 3년차' 박정환(26)의 왼발슛이 팀을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는 순간이었다.

1999년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입단한 박정환은 주로 2군에서 뛰며 그저 그런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우연하게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최용수의 일본 진출 이후 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정광민이 음주 파동으로 퇴출되면서 1군으로 승격된 것이다.

여름 휴식기가 끝난 지난달 18일 부천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한 박선수는 후반 시작과 함께 0 - 1로 뒤지던 팀의 동점골을 넣었다. 그의 시즌 첫골이자 통산 2호골이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최근 일곱경기에서 다섯골을 넣는 골 감각을 선보였고 팀까지 그의 상승세와 발맞춰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박정환이 선취골을 기록한 지난 5일 성남전에서 팀은 마침내 선두에 나섰다.

99년 당시 인천대 4학년이던 박정환을 눈여겨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은 인천대와의 연습경기 중 골문 앞에 가까이 갈수록 침착해지는 박정환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드래프트에서 진순진.김성재에 이어 3순위로 그를 뽑았다.

그러나 박정환에게 지난 2년은 이름만 프로일 뿐 존재이유를 의심할 만큼 어려운 나날이었다. 올 시즌 전반기까지 2년반 동안 1군 경기에는 단 다섯경기에 출전했다. 게다가 최태욱.최원권.박용호.한정화 등 고졸 출신 후배들이 올해 맹활약하자 '계속 축구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찾아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계기로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꽉 붙잡았다. 조감독은 박정환을 대전 시티즌의 이태호 감독에 비유했다. 조감독은 80년대 중반 국가대표 시절 자신이 링커로, 이감독이 스트라이커로 뛸 당시의 이감독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선수가 체력과 집중력 보완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를 곁들였다.

최근 경기장에 박정환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등장했지만 아직도 그는 "당장은 남은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는 게 꿈" 이라며 '신인' 처럼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을 털어놓았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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