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웅작 새 연극 2편 한국 현대사 집중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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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늘 '새 피' 가 부족한 대학로 연극판에 한 중고 신인의 질주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1997년 늦깎이로 극작.연출 데뷔(작품은 '파리들의 곡예' )한 김태웅(36.사진)이다. 김씨는 데뷔 이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극작 공부를 했다.

이 학교의 김광림.이강백.황지우 교수에게서 배운 김씨는 지난해 '이(爾)' 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프랑스 보들레르의 산문시 '어느 영웅적인 죽음' 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은연중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것으로, 연극협회가 뽑은 '2000년 베스트5' 에 꼽히며 화제를 뿌렸다.

얼떨떨한 상찬에 자중하던 그가 이달 작품 두편을 토해냈다. 자신이 쓰고 연출하는 '풍선교향곡' (30일까지, 바탕골소극장)과 독특한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이성열 연출의 '불티나' (18~10월 14일, 연우소극장)가 그것이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 '풍선교향곡' 은 한 소녀를 통해 근현대사에 얼룩진 파시즘(폭력)의 문제를 다루었다. 반면 '불티나' 는 1980년대의 '민주화의 불' 과 오늘날 만인이 쓰는 '불티나 라이터의 불' 을 대비하면서 소시민적 삶을 옹호한 작품이다. "

사회를 보는 김씨의 시각에는 분명 형이상학적 은유가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연극에서 많이 잃어버린 부분. 연극이 일상 탐구로 눈을 돌리면서 참여적 비판의식은 상당히 약화됐다는 이야기다. 80년대 치열했던 연우무대의 작업이 지금 맥못추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형식적으로는 짤막한 장편(掌篇)희곡을 개발하면서 내용은 사회비판을 다루고 싶다. 표현법으로 풍자가 적당한데, 문제는 이런 경향의 작품은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제의식을 깊이하며 오랜동안 여기에 몰입해보고 싶다. "

김씨는 연극원 극작과 1기. 연극원은 당초 이론가보다는 현장에서 즉시 쓰이는 예술가의 양성을 목표로 해서 설립됐는데, 그동안 배우 양성에는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극작.연출 쪽에는 실력파들이 제법 나오고 있다. 김씨 같은 의식있는 신인들이 연극계에 속속 진입하는 것을 보면 '연극의 봄' 도 머지 않은 모양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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