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 몰린 거문도 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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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1일 오전 1시 전남 거문도 남쪽 앞바다 10㎞ 해상. 1천5백W 전구 42개가 대낮처럼 불을 밝힌 9t급 남광호 어부들은 은갈치 떼를 걷어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원들이 수십가닥의 낚싯줄을 솜씨좋게 당길 때마다 은백색 갈치가 칼춤을 춘다.

그물로 갈치를 잡을 경우 서로 물어뜯거나 발버둥쳐 몸체가 찢기거나 비늘이 벗겨져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낚시로만 잡고 있다. 선원 김영배(42)씨는 "갈치들이 불빛을 보고 몰려오지만 어획량은 실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고 말했다.

낚싯줄을 바닷속 50m 가량 내리는 과정에 특히 신경이 쓰인다. 잡은 갈치를 배 위에 올리는 순간 미끼를 빼내는 일도 쉽지 않다. 미끼를 그대로 두면 갈치 몸 속에서 썩어 가장 맛있는 배쪽의 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낚싯배는 끊임없이 흔들려 10분도 제자리에 서있기 힘들지만 수평선에 점점이 떠있는 갈치잡이 어선들의 불빛이 은하수처럼 널려 있어 아름답기 조차하다.

선원생활 20년째인 조창호(43)씨는 "밤참을 먹을 때 말고는 동료들과 얘기도 하지 않고 갈치와 싸운다" 고 말했다.

오후 5시쯤 출항해 하룻밤 조업에 보통 한사람이 한상자(상자당 10㎏ 기준)씩 잡는다. 한사람이 최고 11상자를 잡는 경우도 있다. 선원들은 자기 어획량을 선주와 절반씩 나누므로 그만큼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여수 선적 제일호 선장 김한기(57)씨는 "11년째 갈치 채낚기 어선을 타왔지만 올해같은 풍어는 처음" 이라고 말했다.

거문도 어장은 6월부터 11월 초까지 제주 성산포 앞까지 70㎞에 걸쳐 형성된다. 갈치는 2~3월 제주도 서남해역에서 월동하고 4월부터 북으로 이동, 4~8월 서남 연안에서 산란하고 9월 이후 수온이 낮아지면 서서히 월동장으로 이동한다.

여름철 산란을 끝내고 가을이 되면 충분한 먹이를 취하기 때문에 갈치는 이때 제맛을 낸다.

거문도에 갈치 어군이 형성되면 부산.제주.여수.고흥 등에서 1백~2백척의 어선들이 몰린다. 이들 중 상당수는 거문도에 진을 치고 갈치잡이에 열을 올린다. 거문도 현지 배들은 30여척 정도. 외지 배 선원 3백여명 이상이 거문도에서 묵어 섬 경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배들은 대개 3.5~29t급으로 어부 4~8명이 함께 조업한다.

거문도는 낚싯배가 들어오는 오전 6시부터 부산해진다. 선착장에 닿아 있는 거문도 수협 2백여평 위탁판매장에는 중매인 10여명과 일꾼들, 관광객들이 북적대며 신선한 갈치를 기다린다. 상자에 가지런히 놓인 갈치는 들어오는 순서대로 경매에 부쳐진다.

거문도 수협 유통사업과 직원 세명이 중매인들을 상대로 경매를 진행하는 사이 선원들은 자기가 잡은 갈치 상자 위에 꼬리표를 붙여놓고 숙소나 인근 다방으로 향한다. 이날 오전 9시까지 거문도에 들어온 95척의 갈치 채낚기 어선 위판량은 1만6천1백㎏(1천6백10상자), 위판고는 1억5천5백만원으로 보통 수준.

올들어 8월말까지 거문도 수협 위판량은 모두 7천18t(위판고 48억7천여만원)으로 지난 한해 동안의 3백44t(35억원)을 넘어섰다.

거문도 수협 김장호(68)이사는 "10월까지 위판고 70억원 달성이 거뜬할 것으로 보여 최대의 갈치 풍어를 기록하게 될 것 같다" 고 말했다.

거문도=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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