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최선의 행동이 회사엔 최선 아닐 수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3호 30면

구학서 신세계회장

Q.윤리경영 교육은 어떻게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게 뭔가요? 누구를 대상으로 교육을 해야 합니까? 윤리경영 교육을 사이버상에서 하는 것도 효과가 있나요? 아니, 근본적으로 윤리경영이라는 게 교육을 통해 학습될 수 있는 건가요? 윤리경영 교육의 애로는 무엇입니까?

경영 구루와의 대화편 구학서의 윤리경영 ⑥

A.윤리경영 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교육을 통해 윤리의 실천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천을 담보하려면 윤리경영에 대한 오너와 경영진의 의지가 확고하고, 이들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경영진에게 과연 윤리경영에 대한 진정성과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죠. 이런 진정성과 의지를 일차적으로 회사 간부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저는 간부 교육을 할 때마다 승진의 첫째 조건은 윤리적인 면에서 흠결이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절대 승진을 시키지 않겠다고 강조하죠. 인사철이 되면 실제로 유능하지만 윤리적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은 승진이 안 됩니다. 간부들이 볼 때 능히 승진할 만한 사람인데 승진이 안 되는 겁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 중엔 ‘나중에 사장까지 하겠구나’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비로소 ‘아 그 일 때문에 승진이 안 됐구나, 그런 문제를 일으키면 나도 승진을 못하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윤리적인 기준이 다른 어느 기준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따르는 막대한 리스크를 당사자들이 실감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윤리경영을 인사와 연계시켜야 합니다.

윤리경영은 협력회사의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력사 CEO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합니다. 윤리경영은 우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세 번 했는데,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협력회사에 여러 차례 협조 공문도 보냈습니다. 일례로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지난해 명절 선물, 골프 접대, 향응을 받은 우리 임직원이 회사를 그만뒀고 선물 등을 보낸 협력회사와는 거래를 중단했다. 앞으로도 윤리경영을 위배하는 회사와는 거래 중단 등 거래의 제한이 불가피하다. 이번 설엔 우리 임직원에게 금품을 전달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

이렇게 협력사 CEO들에게 교육을 하고 공문도 띄우면 ‘아 적어도 구 아무개한테는 금품이 안 통하겠구나’ 하면서도 그런데 ‘아랫사람들도 과연 그럴까, 개중엔 금품을 바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우리 직원 전체가 100% 윤리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요. 윤리적으로 취약한 직원을 고의적으로 노리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윤리경영 교육은 케이스 스터디가 그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신세계의 윤리규범엔 신세계 직원의 경조사에 협력회사가 금품을 내놓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면 거래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아예 명문화돼 있죠.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닥치면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상의 케이스를 놓고 토론을 벌입니다. 먼저 해당 팀장이 회사가 설정한 가상의 케이스를 소개합니다. 가령 이런 식이죠. “구매팀 김 과장이 다음 주에 결혼을 한다. 어느 날 팀의 선임인 이 과장이 팀원들을 소집해 각자 맡고 있는 협력회사에 김 과장의 결혼 소식을 전하라고 귀띔한다. 상사의 지시이다 보니 모두 e-메일과 휴대전화 메시지로 협력회사에 김 과장의 결혼 건을 알린다. 경조사를 협력회사에 알리는 것이 윤리규범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사의 지시니까 따른 것이다.” 이렇게 케이스를 공유하고 나서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토론을 벌이는 겁니다. 이때 사전에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가 늘어놓을 수 있는 변명을 정리한 ‘변명카드’를 뽑아 팀원들로 하여금 나름대로 설명을 시도하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나면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전에 학습된 대로 행동을 하게 되죠. 이 가상의 케이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리경영은 윗사람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은 대면 교육을 하는 것도 최고위층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때 윤리경영이 회사 방침이라는 것을 직원들이 더 확실히 깨닫기 때문입니다. 중간층에서 저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어렵습니다만 무엇보다 윤리경영에 대한 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죠. 윤리경영은 톱다운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윤리경영에 대한 교육은 사이버 교육이 효과적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오프라인 교육은 정해진 시간에 강의를 듣는 것으로 끝나지만 온라인에서는 Q&A를 통해 실질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고 자기 의견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신세계의 경우 사내 통신망에 윤리경영을 다루는 섹터가 따로 있습니다. 여기에 FAQ(자주 하는 질문)가 있고, Q&A와 토론도 여기서 할 수 있어요. 기업윤리실천사무국에서 올린 답변에 대해 댓글도 달 수 있습니다. 윤리경영에 대한 콘텐트가 여기에 집대성돼 있는 셈이죠. 또 임직원들로 하여금 해마다 온라인에서 윤리규범을 정독한 후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윤리경영 교육을 하면서 느끼는 애로는 교육을 맡길 마땅한 외부 강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대학에 체계적으로 공부하신 분이 없습니다. 윤리경영을 다루는 교수들 중에는 경영학·경제학을 하신 분도 있지만 철학이나 영문학 전공하신 분도 있습니다. 윤리경영이 중요한 반면 이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신 분이 아직은 없다고 할 수 있죠. 윤리경영은 어떻게 보면 학제적 접근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경영학과 철학 등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꽃피워야 할 학문이죠.

현업에 종사하는 기업체 직원들에게 윤리경영의 필요성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실천 의지를 북돋워줄 외부 교육기관이나 강사도 없는 실정입니다. 부분적으로, 가령 사회봉사라든지 환경 문제 등에 대해 강의할 분들은 있지만 윤리경영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루는 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쉬운 대로 내부의 기업윤리실천사무국에 강의를 맡기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교육을 하려니까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죠.

신세계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002년 윤리경영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윤리적인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경로를 선택해야 하는지 교육하기 위해 신세계 윤리지도도 만들었습니다. 여기엔 이런 갈등적 상황에서 느끼는 혼란에 쐐기를 박는 문구들이 적혀 있습니다. ‘신세계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합리화시키면서까지 달성해야 하는 비즈니스 목표란 없다’ ‘자신을 위해서는 최선인 행동이 회사를 위해서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같은 것들이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