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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난중일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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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나흘 후면 충무공 탄신일이다. 그가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기록한 『난중일기』를 다시 읽는다. 몸으로 써내려간 일기다. 거기엔 ‘성웅(聖雄)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이 드러나 보인다. 특히 모함으로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풀려나와 백의종군 중 어머니상을 당한 때의 일기는 애절하고 비통하다. “일찍 식사 후에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바닷가로 나갔다. … 아직 배가 오는 소식이 없다고 했다. … 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였다. …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에 적었다.”(1597년 4월 13일자)

# 충남 아산 현충사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칼 두 자루가 있다. 모두 당대의 대장장이로 솜씨가 뛰어났던 태귀연과 이무생이 만든 것이다. 1594년에 만든 것이니 족히 416년이 넘은 것들이다. 거기 이런 검명이 새겨져 있다.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떤다.(三尺誓天 山河動色)”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과 강을 물들인다.(一揮掃蕩 血染山河)”

#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은 살려고 생각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1597년 9월 15일자) 충무공은 적에 맞서 싸울 때, 이렇게 외치며 군을 이끌었다. 대통령은 군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군의 최고 통수권자로서 마땅히 엄한 잣대로 군을 일신시켜야 한다.

# 나라 안팎의 사정이 참으로 가관이다.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우리는 사건의 원인조차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다. 여기에 북에선 전격적으로 금강산 관광지역 내에 있는 정부와 관광공사 소유 5개 부동산을 몰수한다고 밝혔다. 걷어차이고 뺨까지 맞은 격이다. 사회의 비리를 척결하라고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검찰은 스스로 스폰서에게 발목 잡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됐고 이 와중에도 정치권은 지방선거에 매몰돼 나라 안팎의 위중한 상황에 대해선 남의 일 보듯 한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난중(亂中)이다.

#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1595년 7월 1일자) 이런 충무공의 탄식이 어찌 410여 년 전의 일로만 들리겠는가. 그의 탄식은 오늘 우리의 탄식에 다름 아니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