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전염병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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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지금까지 등장한 의학적 개가 중 인류의 건강에 가장 기여한 업적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18년 영국의 과학자 플레밍이 사상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항생제의 등장으로 인류는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1981년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즈를 필두로 광우병과 조류(鳥類)독감.병원성 대장균 O-157 등 신종 전염병이 잇따라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최강의 항생제인 밴코마이신에도 죽지 않는 이른바 슈퍼박테리아까지 등장했다.

보다 큰 문제는 잊혀졌던 전염병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말라리아가 창궐해 지난해에만 4천여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질도 해마다 수천명의 환자를 낳고 있다.

최근 경북 영천에서 발생한 콜레라도 예사롭지 않다.

비록 적은 숫자지만 전염력이 강해 격리 수용이 필요한 1군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화살은 방역당국으로 돌아간다. 물론 괴질이 발생했을 때 원인 규명과 확산 방지 등 초동 진압에 나서는 것은 방역당국의 몫이다.

그러나 4천만의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한된 인력과 예산을 지닌 방역당국이 콜레나나 이질같은 수인성 전염병까지 일일이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열쇠는 국민 개개인의 위생관리에 있다. 이들 전염병은 끓여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조리사는 손을 깨끗이 씻고 음식물을 청결하게 보존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20세기 들어 인류의 평균수명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가장 큰 이유로 상.하수도와 목욕시설의 보급 등 청결한 위생의 확보를 꼽는다. 결코 항생제와 같은 의학적 개가가 아니다.

첨단 의학이 돋보이는 21세기에도 손을 씻고 음식물을 끓여먹는 것만큼 중요한 건강수칙은 없다는 결론이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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