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일본 총리 지지율 곤두박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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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개혁에 대한 저항이 높아지고 이에 대한 고이즈미의 대응책인 '비선정치' 가 또 역풍을 맞는 등 개혁전선에 이상기류가 지속되고 있다.

◇ 저항 받는 비선정치=고이즈미는 취임 뒤 총리 관저에 5개의 개인 간담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자민당 총재선거 때 약속한 우정3사업 민영화.총리공선제.행정개혁추진을 위해 3개를 만들더니 최근에는 경제.산업 및 외교 간담회 등 2개를 더 설치했다. 곧 국립묘지 설치안을 검토하는 간담회도 만들 예정이다.

우정3사업 간담회는 평론가인 다나카 나오키(田中直毅), 총리공선제 간담회는 사사키 다케시(佐佐木毅)도쿄대 총장이 각각 대표를 맡아 외형은 민간 자문조직 형식이다.

고이즈미 총리도 "좋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연구회에 불과하다" 는 입장이다. 그러나 반(反)고이즈미 세력의 의견은 다르다. 자민당과 정부 일부에서는 "사실상 총리 자문기구" "고이즈미가 정부.당을 밀어젖히고 비선에 의존해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려는 것" 이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지(時事)통신은 "당을 유명무실화하려는 의도라는 반발도 있다" 고 전했다. 한 정치분석가는 "실업급증.주가폭락 등 경제가 계속 악화하고 국민불만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고이즈미식 대중정치가 현실의 벽에 부닥쳐 삐그덕거리고 있는 것" 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 6월까지만 해도 80%대였던 고이즈미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엔 60%대로 떨어졌다.

◇ 높아가는 보수 목소리=올 가을 임시국회 초미의 관심사인 추경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양상은 개혁에 대한 반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이즈미는 재정개혁을 위해 올해부터 국채발행을 30조엔 이하로 묶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민당 내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30조엔에 매여서는 안된다" 는 주장이 늘고 있다. 규마 후미오(久間章生)자민당 정조회장대리는 2일 "경제가 계속 악화하고 세수가 줄어들면 국채발행 계획도 달라져야 한다" 고 주장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보수당도 "국채 30조엔은 목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 밝혔다. 야당인 민주당만 개혁을 거듭 촉구, 여당과 야당이 바뀐 양상마저 전개되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고이즈미 인기에 밀려 숨죽이고 있던 자민.공명.보수 등 연립 3여당 내 보수세력들의 대항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이라고 진단했다.

◇ 늘어가는 타협= "개혁을 위해 3년만 참아달라" 고 호소해왔던 고이즈미 총리는 최근 급속히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업률이 예상보다 빠르게 5%에 이르면서 원성이 높아지자 2조엔(약 20조원) 정도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대응키로 했다. 7일에는 고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개혁을 위해 고통을 참아달라' 는 말을 하는 대신 대증(對症)요법으로 타협한 것이다.

14일 발표할 개혁일정표에도 '우선순위를 공익법인 정리 등 전체적인 개혁에 맞춘다' 는 방침이 후퇴해 '의료.보건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 가 우선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행이 18일 금융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자민당의 압력에 따른 결과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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