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6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67. 부인 남산댁의 설움

성철스님이 출가하기전 결혼했던 부인 이덕명 여사, 남산댁은 남편에 이어 딸마저 출가하자 한동안 말을 잊었다고 한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도(道)를 찾겠다' 며 뱃속의 아이까지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어렵사리 얻은 딸은 아버지를 한번 보고 와서는 변해버렸다. 똑똑하단 소리 들으며 공부 잘 하던 딸이 학교에 가도 참선만 한다고 하고, 집에 와서도 참선하니 조용히 하라고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제 한 숨을 돌리나 했더니 "3년만에 득도하겠다" 는 엉뚱한 말만 남기고 집을 떠난지 오래. 복받치는 설움과 외로움을 삭이지 못한 남산댁이 드디어 대구 파계사 성전암으로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당시 성철스님은 성전암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아무도 허락 없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살았다. 어쩌다 "큰스님을 꼭 뵙겠다" 거나, 아니면 "도를 깨쳤으니 큰스님께 인가를 받겠다" 며 철조망을 뚫고 들어오는 스님이 간혹 있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남산댁 역시 성전암에 도착은 했지만 철조망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 철조망을 덮고 벌리며 뚫고 들어갔다.

성전암에는 성철스님 외에 시자 스님 세 명이 살고 있었다. 당시 같이 살았던 천제스님이 들려준 기억이다.

"인기척이 있어 밖으로 나가와보니 웬 중년 부인이 큰스님 뵙기를 청하는 거예요. 가끔 있어온 일이기에 별 생각 없이 돌려보내려고 타일렀지. '큰스님께서는 지금 아무도 만나주시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시소' 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 여인이 아무 대답 없이 그저 '큰스님을 만나야한다' 는 말만 반복하는 거야. 하루 종일 같은 말로 밀고 댕기고 했는데, 해질녘이 돼서 그 분이 어디 갔는지 사라졌어. "

스님들은 당연히 '돌아갔겠거니' 생각하고 저녁 공양을 마쳤다.

저녁 공양이 끝나면 성철스님이 거처에서 시자실로 잠시 건너와 10분 정도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곤 했다. 그날도 저녁 공양을 마친 큰스님이 시자실로 건너와 좌복 위에 앉아 막 말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우당탕. "

문이 부서지는지 열리는지 모를 큰 소리를 내는가 했더니 낮의 그 여인이 들이닥쳤다. 큰스님의 고함이 터진 것도 거의 동시였다.

"빨리 저거 쫓아내라. 뭐 하노,빨리 쫓아내. "

여인은 아무 말이 없이 큰스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여인을 쫓아내기위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밀려나던 여인이 외쳤다.

"스님, 내가 할 말이 있어 왔습니데이. "

시자들도 황당했다. 무슨 여인이 이리 황소고집이기에 하루 종일 어디 숨어 있다가 난데없이 나타났는지, 또 큰스님은 왜 그렇게 노발대발 하는지. 시자들도 화가 났다. 거칠게 끌어냈다.

세 행자가 여인의 손과 발을 잡고 끌다시피 하며 무려 1.5㎞나 되는 길을 내려와 파계사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여인이 단념했는지 '휴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자님들, 내 다시 올라가지 않을건께 인자 놓고 올라가소. "

세 행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성전암으로 올라갔다. 체념한 여인은 땅이 꺼지게 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성철스님께 "저 밑에까지 쫓아내고 왔습니다" 고 보고했다.

"성철스님이 아무 얘기도 않더라구. 그러니 그냥 어떤 신도가 찾아왔다가 쫓겨난지 알았지. "

여인이 성철스님의 부인임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나서다. 성철스님의 아버지가 운명했다는 소식이 성전암에 와닿았다. 성철스님은 별 말 없이 천제스님에게 문상을 하고 오라고 지시했다.

"경호강을 나룻배로 건너 상가에 도착했지. 문상을 하고 일어서는데, 소복입은 맏며느리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라. '본 일이 없을텐데, 어디서 봤나' 하고 한참 생각했지.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 그 때 쫓아낸 그 여인이야. 얼마나 무안하고 참담했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참 이런 때를 두고 말하는구나 싶더라구. "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