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대통령의 누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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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파리시장 재직 시절 거액의 국고금을 사용한 것 때문에 곤욕을 치른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휴가 문제로 또 한차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엔 돈이 아니라 자신의 누드사진 문제다.

프랑스 남부 지방으로 휴가를 다녀온 시라크는 남프랑스 지방에서 모처럼 파리에서의 골칫거리들을 다 훌훌 벗어버리고 한가로운 일정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너무 벗다 보니 자신의 누드마저 공개되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맞은 것이다. 휴가지 근처에서 망원렌즈를 달고 기다리던 악명높은 프랑스의 파파라치들에게 시라크의 나체가 잡힌 것이다.

문제의 사진은 그가 해안의 한 별장 발코니에서 나체로 바다에 떠다니는 요트들을 한가롭게 감상하고 있는 장면이다.

지난 4일 촬영됐다는 이 사진들 중에는 보기에 민망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한 대통령의 누드가 여러장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종을 한 것은 좋았는데 파리의 파파라치들도 대통령의 사진이라 많은 고민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문제의 사진들은 즉각 공개되지 않았다.

파파라치들은 이를 공표할 경우 장차 취재 금지 등 '보복' 을 당할까 두려워 고민 끝에 사진을 언론사에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문은 은밀히 퍼져나갔고 프랑스의 화보 중심 주간지 '파리 마치' 가 문제의 나체 사진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을 입수한 '파리 마치' 편집진도 게재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판단, 시라크의 나체 사진을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소문은 일파만파 번져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 사이에는 시라크가 나체사진을 찍혔다는 게 다 알려졌다.

엘리제궁측은 부랴부랴 파파라치들을 설득하고 언론사들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의 사진들이 영국.독일 등 이웃나라 주간지들에 팔려갈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엘리제궁의 고민이다.

집안 단속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웃집의 '언론 자유' 까지 간섭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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