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LA 북핵 발언] 미국 전문가·언론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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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에 대해 미국 정부는 13일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소력을 발휘하기보다 북핵협상에서 한국의 중재력을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파장을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미국은 북핵 문제를 놓고 한국과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만큼 이번 발언에 대해 앞으로도 공식적 반응을 삼갈 것"으로 전망했다. 발언 중 "북한의 (자위를 위한)핵.미사일 보유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대목이 미국을 자극할 가능성에 대해 그는 "노 대통령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온 만큼 미국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이 북한과 미국을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는 점에서 그렇게 생산적인 발언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현 시점에서 미국에 중요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의 반응"이라며 "미국은 3차 6자회담에서 내놓았던 제안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따라 다음 행동방향을 정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부시 행정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한편 한.미 관계에 밝은 한 소식통은 "오는 2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밀접한 워싱턴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상당한 뜻을 갖고 전부터 준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자신의 비전(국내외 정책)을 펼치는 데 북핵 문제가 가장 큰 장애라고 여기고, 돌파구 마련을 위해 미국이 좀더 신축성을 가져줄 것을 암시한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AP통신은 13일 "노 대통령은 북핵을 대화로 막아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미국에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이날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거명하지 않은 채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강경 입장을 취하면 중대한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들은 주한미군 출신 고교 교사 니컬러스 벡은 "그가 설명한 북한은 내가 아는 북한이 아니다"며 "북한은 암살단을 휴전선 너머로 남파하고 해안에 잠수정을 상륙시켰다"고 지적했다.

역시 노 대통령 발언을 들은 한국계 대학생 2명도 "대북협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고, 북한을 너무 많이 믿는 것 같다"고 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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