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상품값 할인제, 전기료 누진제 왜 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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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물건을 살 때 가게 주인이 값을 깎아준 적이 있나요. 자주 찾아가는 단골 가게에서 살 때, 또는 한꺼번에 많이 살 때 주인이 값을 깎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죠.

가게 주인으로선 조금 싸게 팔더라도 많이 팔아 이익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한개 팔면 1백원의 이익을 낼 수 있는 가게가 있다고 해봅시다.

1천원에 팔 때 보통 하루에 10개 정도가 팔렸는데, 어느 날 값을 내려 개당 9백50원에 팔아 보니 30개가 나갔다면 가게 주인은 어느 가격으로 파는 게 유리할까요.

1천원에 10개를 팔 때 이익(1천원=1백원×10개)보다 9백50원에 30개를 팔 때 이익(1천5백원〓50원×30개)이 많으니까 당연히 9백50원에 팔려고 하겠지요.

이런 이치때문에 많은 가게나 회사들이 많이 살 경우 물건 값을 깎아주는 할인 판매를 합니다. 할인판매는 적은 이윤으로(박리) 많이 판다(다매)고 해서 박리다매(薄利多賣) 판매기법이라고 하지요.

물건 값은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를 단순하게 보면 사겠다는 사람과 물량이 얼마나 많은지(수요)와 팔려는 사람과 물량이 얼마나 많은지(공급)에 의해 정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고, 그 반대면 가격이 떨어지게 되지요.

이런 원칙에 의해 이론적으로는 한 가지 물건에 하나의 가격이 정해져야 합니다. 이를 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이라고 하죠.

하지만 일물일가 법칙은 물건을 살려고 하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의 조건이 똑같다는 완전 경쟁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은 좀 다릅니다.

당장 물건을 사러 다니다 보면 동네 가게보다는 대형 슈퍼마켓이, 슈퍼마켓보다는 할인점이 싸게 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판매코너를 이용하면 할인점보다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값을 조금 낮춰주더라도 많이 팔면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낮은 값에 팔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건을 파는 사람이 할인판매 경쟁만 할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답니다. 물건을 많이 살수록 값을 비싸게 매기는 경우도 있죠. 누진제가 그런 것입니다.

전기요금 누진제가 대표적인 것이죠. 올 여름 유난히 더웠지만 전기요금 때문에 에어컨을 맘껏 켜지 못했다는 집이 많았습니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요금이 증가하는 누진제 때문이죠.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는 7단계로 되어있습니다. 한달동안 사용량이 50㎾h(킬로와트아워)를 넘지 않을 때는 1단계 요금인 ㎾h당 34.5원의 요금을 내게 됩니다.

그러나 5단계인 3백1~4백㎾h에 대해서는 ㎾h당 3백8원의 요금을 내야 하고, 마지막 7단계인 5백㎾h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h당 6백39.4원을 내야 합니다.

5백㎾h를 넘는 전기를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5백㎾h 초과분에 대해 1단계 요금보다 18.5배나 비싼 값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h(킬로와트아워)라는 단위가 좀 어렵죠. W(와트)는 전력 단위로 1㎾h는 1천W의 전력을 1시간 동안 사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가전제품을 보면 소비전력이라는 게 표시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트북 컴퓨터의 소비전력이 보통 40W(왓트)이므로 노트북 컴퓨터를 하루에 5시간씩 30일동안 썼다면 한달 사용량은 6㎾h(40W×5시간×30일/1, 000)이 된답니다.

그렇다면 다른 제품과는 달리 왜 전기는 많이 살(쓸)수록 거꾸로 비싼 값을 내도록 했을까요.

이는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 가격을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쓴 전기 중 60% 가량은 외국에서 수입한 석탄이나 석유를 이용해 생산한 것입니다.

전기를 많이 쓰면 그만큼 달러를 주고 외국에서 석탄이나 석유를 많이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나라 살림에 주름살이 가게 되겠죠.

그래서 전기를 아껴 쓰도록 하기 위해 많이 쓸수록 비싼 요금을 받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에 전기요금 누진제가 도입된 해는 1974년으로 석유값이 갑자기 많이 올라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1차 석유파동이 계기가 됐답니다.

이 제도는 또 서민을 위한 것이기도 하죠. 아무래도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보다는 적게 쓰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많이 쓰는 사람에게 비싸게 받는 대신 적게 쓰는 사람에게는 싸게 공급하자는 겁니다.

전기라는 상품을 정부 혼자만 팔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죠. 만일 전기도 다른 상품처럼 여러 회사가 파는 것이라면 경쟁때문에 누진제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겠죠.

하지만 평상시엔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정도 여름철에 전력소모량이 큰 에어컨을 켜게 되면 누진제를 적용받아 요금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이번 여름에 에어컨을 제대로 켜지 못한 가정이 많았던 것입니다.

누진제 덕분에 집집마다 에어컨 가동을 줄여 전기소비는 많이 줄었지만 그만큼 불편을 겪어야 했던 거죠.

전기처럼 누진제를 적용하는 다른 상품으로는 수돗물이 있답니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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