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지하 '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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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이 탓인가

눈 침침하다

눈은 넋 그물

넋 컴컴하다

새벽마저 저물 녘

어둑한 방안 늘 시장하고

기다리는 가위소리 더디고

바퀴가 곁에 와

잠잠하다

밖에

서리 내리나

실 끊는 이 끝 시리다

단추 없는 작년 저고리

아직 남은 온기 밟고

밖에

눈 밝은 아내

돌아온다

가위소린가.

-김지하(1941~ ) '쉰'

쉰이면 바퀴가 곁에 와 멈추는 나이라서 그런가. 시 전체가 어둑하고 조용하나 시인의 귀가 밖으로 열려 있어 거기 "눈 밝은 아내" 가 가위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발짝소리를 듣는다. 뜨락에 아직 남은 온기를 밟고서….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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