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등급 망신 · 평양축전 파문…중심 못잡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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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풀리는 건 없고 모든 게 꼬이기만 한다. "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난 한 여권 인사는 金대통령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연방항공청(FAA)의 항공안전 위험국 판정,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참가자들의 일탈행동, 여기에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마저 공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등급 추락 사태는 대처능력 부재와 위기불감증 탓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임기 말에 터진 외환위기 사태와 유사하다고 한 여권 인사는 지적했다. "대처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안이한 상황판단과 땜질식 처방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는 비판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방북단의 행동에는 정부도 당황하고 있다. 金대통령에 대한 색깔공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벌써 "金대통령은 조국통일 3대 헌장과 햇볕정책의 관계를 명확히 하라" 며 공세에 나섰다.

金대통령은 수시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의 물꼬를 확실히 터놓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이번에 8.15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방북단의 방북을 불허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방침이 바뀐 데는 이같은 金대통령의 소신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측 시각이다.

또 한나라당은 "1999년 기념탑 착공식에 참석해 김일성 대남적화 유훈인 3대 헌장에 충성서약한 인사들의 방북을 허용한 임동원(林東源)통일부 장관의 저의가 뭐냐" 고 다그치며, 오장섭(吳長燮)건설교통부 장관과 함께 국회에 해임건의안을 제출키로 했다.

이런 악재(惡材)들이 잇따라 돌출하면서 이달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당정개편의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여야 영수회담 결과에 따라 개편폭이 달라질 수 있다" 고 전했다.

우선 경제정책면에서 金대통령은 경기 활성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어 경제팀에 대한 수술이 예상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이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쇄신할 당정개편에 가장 큰 걸림돌은 金명예총재의 '몽니' 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吳장관은 스스로 사표를 냈어야 마땅하다" 면서 "그런데도 자민련 몫의 장관이어서 JP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니 답답하다" 고 말했다.

그는 최근 JP가 민주당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것도 당정 개편을 둘러싼 민주당과 청와대 움직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했다. 여기에 林장관이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견인차였다는 점도 金대통령을 더욱 고민스럽게 한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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