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14좌 등반 현황 최초 완등 ‘최후의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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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11일 100여m 떨어진 에두르네 파사반의 베이스캠프를 방문한 오은선(왼쪽) 대장이 안나푸르나 리플릿을 보며 등정 얘기를 나누고 있다. [블랙야크 제공]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각국의 원정대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19일(한국시간) 현재 오은선(44·블랙야크) 팀을 비롯해 스페인의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37) 팀 등 11개국 7개 팀 산악인이 모였다. 16일에는 에콰도르와 이탈리아 합동 팀이 헬기 편으로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

히말라야엔 8000m 이상 봉우리가 14개 있다. 그중 안나푸르나는 인간의 발길이 가장 먼저 닿은 곳으로, 올해가 60주년 되는 해다.

3월 15일 가장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파사반 팀은 한 달여간 고소적응 기간을 거친 뒤 지난 17일 오전 4시 최종 캠프를 출발해 9시간30분 만인 오후 1시30분쯤 정상에 섰다. 베이스캠프 입성 32일 만에 시즌 초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로써 파사반은 오은선 대장과 나란히 히말라야 13좌 등정을 기록하게 됐다.

자연히 세계 산악계의 관심은 여성 최초로 누가 14좌를 완등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파사반은 시샤팡마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고, 오은선은 안나푸르나가 14좌 완등의 마지막 관문이다. 파사반은 19일 베이스캠프로 귀환해 곧바로 헬기 편으로 카트만두로 내려오게 된다. 이어 티베트로 넘어가 1주일 뒤 14좌 마지막 봉우리인 시샤팡마를 공략할 예정이다. 파사반은 시샤팡마에서 네 번의 실패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으로 인해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다. 또 강력한 대원과 셰르파들의 도움으로 등반 개시 후 2~3일이면 무난히 시샤팡마 정상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파사반이 정상 등정에 성공한 17일, 오은선 대장은 2캠프까지 진출했다. 오 대장은 그곳에서 바로 정상으로 향하지 않는다. 고소적응과 정찰을 마친 뒤 19일께 다시 베이스캠프로 내려오게 된다. 이어 사흘간 휴식한 뒤 22일 등반에 나서 25일께 첫 번째 정상 공격을 시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들 두 여성 산악인이 만났다. 지난 4일 파사반의 초청으로 오은선 대장은 100여m 떨어진 파사반의 베이스캠프를 방문했다. 1m80㎝ 큰 키의 파사반과 1m55㎝ 오 대장의 키 차이는 상당했다. 두 사람은 2006년 시샤팡마와 지난해 칸첸중가 등반 때 만난 적이 있다. 14좌 완등을 놓고 첨예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사이지만 다과를 놓고 나눈 대화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파사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디어의 관심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꼭 성공하길 바란다.” 이에 대해 오 대장은 “고맙다. 당신 역시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르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오은선은 지난해 가을, 파사반은 2006년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사반이 말을 받았다.

“오 대장의 등반 속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 어떻게 한 해에 4개 봉우리를 오를 수 있느냐.” 오 대장이 웃으며 답했다.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계획은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이었는데 운 좋게 모두 성공했다.”

한참을 앞서가던 파사반을 추월한 게 2009년. 오 대장은 2008년과 2009년 연이어 4개 봉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

둘 다 막힘 없이 시원시원했다.

오은선은 “우리 경쟁을 보는 시각이 다양하지만 무리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보다 14좌 완등이 더 소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파사반은 “동감이다. 안전에 유의해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신영철(월간 ‘사람과 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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