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본총리 신사참배에 항의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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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일단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항의 성명 카드를 빼들었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참배가 일제의 식민지 피해를 본 국가들의 분노를 살 것이라는 내용이다.

1996년 7월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총리의 사적 참배와 견주면 성명 내용이 강경하고 형식도 한 단계 올라갔다.

정부가 대응 수위를 높인 것은 최근의 한.일 관계 전반을 저울질한 결과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 남쿠릴열도 수역의 어업분쟁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일본 총리가 한국 국민의 감정을 한층 자극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곳을 스스로 찾아간 것 자체에 주목한다" 고 말했다. 고이즈미가 '종전기념일(8.15)' 공식 참배를 피하고, 사적.공적 참배 여부를 얼버무린 것이 정부 대응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 내에선 고이즈미가 '8.15 공식 참배' 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 데 대해서는 안도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고이즈미가 광복절에 '정면 돌파' 를 강행했을 경우의 파장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는 한.일 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당장 올 가을의 연례 한.일 정상회담, 유엔총회에서의 협조는 어떤 형태로든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10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제(APEC)정상회의도 주목거리다. 중국이 대일 강경 태도로 나올 경우 별도의 한.일, 중.일 정상회담은 어려울지 모른다.

정부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성명외의 대응 조치는 취하지 않을 방침이다. A급 전범의 직접 피해를 본 중국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가면 양국 모두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판단도 깔려 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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