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공천 … 군수는 수억, 군의원은 수천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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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소속 이기수 여주군수가 같은 당 이범관 의원에게 2억원을 주려 했다가 구속된 사건은 정치권에서 ‘돈 공천’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의 경우 국회의원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만큼 ‘클린 정치’의 사례로도 볼 수 있지만 세간에선 “돈으로 공천을 사려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18일 “일선 현장에선 ‘공천 받으려면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수억원, 지방의원 예비후보는 수천만원을 내야 한다’는 식의 얘기가 아직도 퍼져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병국 사무총장은 “여주군수가 나한테도 몇 번이나 만나자고 해서 안 만나주니까 우리 지역 축제 행사까지 쫓아왔기에 ‘당신 뜻은 알겠다’며 돌려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나라당 A의원은 “올 초 지역구 구청장 재공천 문제를 검토하고 있을 때 평소 알고 지내는 구청장의 선배가 전화를 걸어 ‘2억원을 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시는 이런 전화하지 말라’며 끊어버렸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B의원도 “한 번만 만나자고 조르는 시의원 예비후보가 있는데 돈을 줄 것 같은 눈치여서 몇 달째 피해 다닌다”고 했다. 경기 지역 기초단체장 예비후보 C씨 측 관계자는 “공천 막판에 돈을 갖다 준 여주군수는 순진한 편”이라며 “인사할 게 있으면 이미 설 전에 끝내놓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공천=당선’ 등식이 성립하는 영·호남에서는 말썽이 더욱 잦은 편이다. 지난달 22일 전북 익산을 지역의 민주당 관계자 최모씨는 “익산의 한 시의원이 지난해 4월 시의원 출마를 모색하던 한 당직자에게 7000만~8000만원의 헌금 준비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해당 선관위는 진상조사를 하고 난 뒤 검찰에 문제의 시의원 등 5명을 수사 의뢰했다. 한나라당 영남권에서도 “D의원이 시 의원에게 공천을 대가로 돈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더라”, “모 구청장이 E의원에게 10억원을 줬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기초단체장·지방의원의 공천권을 사실상 해당지역 당협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이 쥐고 있다 보니 돈 공천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돈 공천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기초단체에 대해선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의원들이 구청장·시장·시의원 공천권을 자기네 밥그릇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범관 “나도 괴롭다”=이범관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군수가 공천에 탈락할까봐 무리수를 둔 것 같다”며 “ 나도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 돌려주려고 했는데 군수가 달아나버려 비서관에게 쫓아가라고 지시했고, 혹시 이 군수 측과 충돌할까봐 내 비서관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김정하·정효식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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