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 · 미대화 중재 의사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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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과 러시아는 4일 발표한 모스크바 공동선언에서 실리를 챙기면서도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국제적인 관심사인 미국의 미사일방어(MD)계획과 관련, 구체적인 비난을 피하고 대신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의 준수를 강조하는 선에서 그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주한 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한 제8항에 '러시아는 북.미, 북.일대화를 희망한다' 는 문구를 삽입해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북.미대화가 중요하며 미국과 한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보여줬다.

게다가 평화통일은 6.15 남북공동선언에 기초해 진행한다는 점을 양국이 재확인했다.

그 때문에 앞으로 남북대화 및 북.미, 북.일교섭의 전망이 밝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 군사평론가 파벨 펠겐하우에르는 "북한과 러시아가 가장 중요시한 점은 북한이 미사일 계획과 관련한 불량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외부에 인식시키고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북.미 대화를 중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미사일 개발 계획과 관련한 북한의 설명에 동의한 것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는 러시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지지선언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북한에 북.미, 북.일대화를 설득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러시아의 의지와 능력을 외부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공동성명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주한미군과 관련한 부분이다. 이는 지난해 7월의 평양 공동성명의 내용에는 없던 것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한 것은 러시아를 후원자로 삼아 재래식 군비감축 문제를 대북대화의 필수의제로 제시하고 있는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양국은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연결 문제와 북.러간 전력 등 각종 경제협력 문제를 공동선언에 포함, 양국 경제관계가 지난 10여년 동안의 소원했던 시기를 접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 내 38개 공장의 복원사업에 적극 참여하면서 북한이 지고 있는 38억루블의 부채를 경협과 연계시키기로 양국이 합의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단 선언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공동선언에 언급되지 않았다.

모스크바=김석환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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