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김광순 경북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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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요즘 우리 사회의 반목질시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각 지역의 설화를 뜯어보면 부락 사이의 '선의의 경쟁과 조화' 가 중시됐음을 알 수 있지요. "

30여년간 설화.민요.판소리.민속극.무가(巫歌).속담.수수께끼 등 구비(口碑)문학을 연구해 온 경북대 국문학과 김광순(金光淳.62)교수.

그가 1990년부터 발로 뛰며 모아온 팔공산 일대와 대구 지역 자연부락의 유래와 변천사, 설화 등을 토태로 『한국 구비문학Ⅰ-팔공산 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한 페이지 분량의 민담을 채록하기 위해 한 마을에 열흘간 머문 적도 있습니다. 민족.서민적인 구비문학엔 당시의 사회구조와 의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지요. 옛것을 부정한다면 현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구비문학은 우리 민족의 삶이자 정신입니다. "

金교수는 이 책에 경북 영천군 청통면 원천1동의 전설 '빨간 뱀이 지키는 약수터' 등 대구.경북지역의 설화 1백여편을 비롯해 모를 찌면서 부른 노래, 화투 노래, 나무 타령 등 민요 60여편과 세시풍속.민속놀이 등을 담았다.

또 KBS TV드라마 '태조 왕건' 과 관련 있는 지명을 상세히 소개했다. 당시 왕건이 지나가면서 군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데서 유래된 무태(無怠), 선비들의 낭랑한 글읽는 소리에 감탄했다는 마을인 연경(硏經), 왕건의 군대가 적진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는 나팔고개, 견훤에게 패한 왕건이 피신했던 산이라는 왕산(王山), 왕건이 달아나면서 잠시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坐巖) 등.

金교수는 이런 것들을 구연자(口演者)의 말을 빌려 설화 형태로 기록했다. 구비문학을 채록한 테이프 3백여개를 갖고 있는 그는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관련 서적을 낼 계획이다. 제2권에서는 비슬산, 제3권에선 고령.합천.성주군 일대의 구비문학을 각각 소개하고 제4, 5권에서는 울산.부산.경남 지역의 소재를 다룰 예정이다.

金교수는 "구연자가 없어지면 우리 예술작품인 구비문학도 소실된다" 며 "힘이 닿는 한 구비문학을 보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말했다.

대구=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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