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가수 김창완이 읽은 '누구에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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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동물의 생태를 다룬 책 속에서 때론 인간들의 원초적 고민이 직설화법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발견하고, 때론 이기적 인간세계에 염증을 느끼기도 한다.

홍콩 출신의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가 1백82컷의 동물 사진과 짧은 글로 엮어낸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The Blue Day Book)』(바다출판사)는 유쾌한 농담이다.

의인화된 동물들의 표정 중엔 치통을 앓는 사자, 풀 죽은 강아지 비글, 부끄러워 혀를 쏙 내민 고양이, 요가 하는 펭귄, 파안 대소하는 돼지 등이 재미있다.

일상의 무거운 고민조차도 가볍게 날려 버리는 작가의 재치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어린시절 울타리 너머로 보았던 갖가지 동물들 표정의 진정한 번역 또는 통역을 안내받을 수 있다.

"생의 진정한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관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양태가 있을 뿐이다. 나무늘보처럼 거꾸로 세상을 보면 고달픈 삶도 행복의 열매로 보이지 않을까" 라고 이 책은 제안한다.

또 다른 책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Lost Animals)』(도요새)을 읽다 보면 나를 비추는 모든 것-거울.유리.물 등-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진다.

단지 뿔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깃털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살코기가 맛있다는 이유로 멸족을 당한 동물들 이야기 속에서 인간들이 누리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고상한 취미에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고독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마리온' 이란 이름의 코끼리 거북을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코끼리 거북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1백20년간 홀로 산 마리온의 죽음은 '자연사' 가 아니었다. 눈물로 참회하듯 글은 이어진다. 1920년 수렵된 자이언트 불곰의 몸에서 '최후의 모피' 가 벗겨졌다.

배드랜드 산뿔산양의 잘생긴 뿔은 이제는 벽에 걸린 장식품으로 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다. 기막힌 죽음들의 부음 같은 글이 있다. "종족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구아다루프 쇠부리 딱다구리는 결국 의심할 줄 모르는 그 습성 때문에 절멸하고 말았다. 단 한순간이라도 인간이란 동물을 의심했더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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