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전문 국제학술지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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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사 전문 국제 학술지가 처음으로 나왔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연구소(소장 최덕수)는 '코리안 히스토리(Korean History)' 를 창간하고 최근 첫 호를 선보였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발행하는 '코리안 저널' 이 문학.역사.철학.문화 등 한국학 전반을 다루는 국제 저널이라면 이 잡지는 한국사로 범위를 한정한 게 특징이다.

앞으로 연 2회 나올 예정인 이 잡지는 모두 영문 원고로 짜인다. 다만 창간호에는 영어 논문과 한글 논문을 함께 실었다. 편집위원은 국내외 한국사 전공자 16명으로 구성했다.

국내에서는 조광 교수 등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6명 전원과 연세대 김준석.서울대 노태돈.성균관대 서중석.서강대 홍승기.숭실대 박정신.영남대 이수건 교수, 해외에서는 미 하와이대 에드워드 슐츠.미 UCLA 존 덩컨.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이성시.중국 베이징(北京)대 량퉁팡(梁通方)교수가 참여했다. 외국의 교수들은 대부분 소속 대학 한국학 센터의 책임자들이다.

창간호부터 논쟁적이며 흥미있는 글이 많이 실렸다. 고려대 민현구 교수는 '원 간섭기 고려의 정치 : 국왕 부재 중 국정운용의 지속성을 중심으로' 이라는 논문에서 한국 역사상 일제 침략기를 제외하고는 외세의 영향이 가장 컸던 원 간섭기 80년간의 고려를 부마국(駙馬國)체제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그 독자적 운용을 들어 고려왕국의 독립성을 논증했다.

예를 들어 충숙왕이 국왕인(國王印.옥쇄)을 빼앗긴 채 4년2개월이나 원에 억류당하는 일이 벌어져 고려의 국정이 마비상태에 빠졌지만, 전통적인 도당(都堂.일명 도평의사사로 최고의 의정기관)의 기능이 작동해 국가체제가 유지됐다는 식의 분석이다.

민교수는 "원 간섭기는 일제시대와 다름없던 국권 상실기였다" 며 "그런 극한 처지에서 신료들을 중심으로 독자적 정치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만의 저력이었다" 고 평가했다.

이밖에 '식민지 근대' 가 지니는 성격과 의미를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한 정태헌(고려대) 교수의 논문과 신라 하대 농민항쟁의 특징을 다룬 이정신(한남대) 교수의 논문 등이 실렸다. 일본 와세다대 강사인 오타 오사무(太田修)는 '제2공화국의 한.일경제협조론과 청구권 문제' 에서 "당시 한.일경제협조론은 장면 정권이 표방했던 '경제제일주의' 에 입각한,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고 분석했다.

조광 교수는 "이미 국내 저널에 소개된 논문이 아닌, 새롭고 독창적인 논문을 엄선해 실을 방침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감한 특집도 생각하고 있다" 며 "철저한 번역 과정을 거쳐 한국사와 관련한 대표적인 국제 저널로 키울 계획" 이라고 밝혔다. '코리안 히스토리' 는 매회 1천부가 발행되며, 외국 대학의 한국학 관련 학과와 도서관 등으로 보내진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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