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중고 냉장고와 전기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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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해 말 우리 집에선 전기요금 때문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평소 3만원 정도이던 전기료 11월분이 6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달 15일부터 가정의 경우 한달 전력 사용량이 3백1㎾h 이상이면 사용량에 따라 평균 6.3~28.9% 누진 인상된다는 신문 보도를 접하고 바짝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곱절이 더 나온 것이다. 그 뒤부터 사용량을 3백㎾h 이하로 떨어뜨리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됐다. 놀리는 가전제품 플러그는 뽑고, 불필요한 전등과 냉장고의 문 여닫는 횟수를 줄였다. 또 매일 사용한 전력량을 검침했다.

이런 노력을 한달 동안 계속했다. 그러나 올해 1월말 받아든 '성적표' 는 사용량 4백34㎾h에 청구액은 10만원 가까웠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검침 자료와 누전을 점검했는데도 이상이 없었다. 급기야 사용 중인 개별 가전제품의 전력 소비량을 모두 조사했다.

냉장고가 문제였다. 문제의 냉장고는 이웃에서 5년 동안 사용하던 5백ℓ형 2등급 제품이었는데, 1년 전 우리가 쓰던 소형과 교환한 것이다. 사실 냉장고를 바꾼 뒤 전기요금이 더 나오긴 했다. 그러나 새 것을 사는 데 드는 목돈을 절약하려고 계속 사용했다.

결국 6백ℓ 짜리 새 제품을 1백20만원을 들여 장만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장에 큰 돈이 들어가자 아내가 반대했다. 그런 아내를 2년만 지나면 절약한 전기료가 새 냉장고 값을 넘는다고 설득했다.

한달 뒤 다시 날아든 청구서엔 사용량 2백75㎾h, 3만6천1백10원이 적혀 있었다. 전기요금 인상에 관한 신문기사를 접했을 때 한번쯤 차분하게 계산해 봤으면 수학 교사로서 이런 창피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학은 생활 속에 있다. 숫자만 보면 고개를 내젓지 말고 들여다보시라. 거기에 돈도 숨어 있다.

김흥규 <서울 광신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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