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무대 '끈'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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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교무대에서 인맥이나 물밑 파이프가 완벽한 해결수단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 교섭이 관료간 줄다리기로 한계에 부닥쳤을 때 상대국 수뇌부.실력자와의 인맥은 때로 숨통을 틔워준다.

한.미, 한.일간에는 흑막의 파이프가 문제가 된 '부(負)의 외교사' 도 있지만 인맥으로 사태가 반전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주변 4강외교가 꼬일대로 꼬인 요즘 지미(知美).지일(知日)파가 아쉽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달 한.미 국방장관 회담차 미국에 들렀던 김동신(金東信)국방장관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면담을 가졌다. 일정에도 없었던 면담이 이뤄진 것은 그의 대미 인맥 덕분이라고 군 관계자는 전한다. 미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미국과장을 두번 지낸 金장관은 꾸준히 대미 인맥을 관리해 왔다는 것.

그러나 우리 정부 내에 미국 행정부의 실세나 공화당 핵심의원들과 연(緣)을 갖고 있는 인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은 반면교사(反面敎師)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토켈 페터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아시아 수석국장, 마이클 그린 NSC 아시아 담당관 등 상당수가 지일파로 분류된다. 대부분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정권 때 기용됐던 인사들이라 'PTA(師親會) 안보팀' 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 정부나 학계는 이들이 야인이었을 때 일본에 곧잘 불러들였고 언론사나 출판계는 이들의 기고문을 자주 실었다. 일본의 모 통신사 부장은 "아미티지는 나의 친구" 라고 말할 정도다. 현 미.일관계가 레이건 대통령-나카소네 총리 때만큼 긴밀해진 것은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진 덕도 있지만 미국 내 지일파들의 윤활유 역할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일 정치인간 파이프 구축도 발등에 불이다. 지난해 양국 총선 때 지일파.지한파 의원들이 무더기로 낙선한 데다 한.일간 막후 파이프였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전 총리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총리가 사망해 큰 구멍이 생겼다. 두사람은 1998년 한.일 어업협상을 비롯한 고비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민당 매파의 본류를 잇는 고이즈미 총리나 그 측근들과는 마땅한 끈이 없어 보인다. 내각책임제인 일본과는 정치적 타협으로 난제를 풀고 고비를 넘겨왔기 때문에 싫든 좋든 막후채널은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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