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유혈시위 현장을 가다] 시위대, 진압군 30명 인질 잡고 협상도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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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태국 방콕 도심에서 시위대가 전날 밤 시위 도중 진압군으로부터 빼앗은 장갑차 위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진압군은 유혈 사태의 확산을 우려해 방콕 외곽으로 일시 철수했다. [방콕 AFP=연합뉴스]

한 달 가까이 반정부 시위가 계속된 태국 방콕에서 10일 밤 진압부대와 시위대 간 충돌이 발생해 21명이 숨지고, 870여 명이 부상했다. 태국 당국은 이날 장갑차 등을 동원해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 사임과 의회 해산을 요구하고 있는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빚어져 시위대 16명과 군인 4명, 일본인 로이터통신 기자 1명이 숨졌다. 1992년 반군부 시위 과정에서 40여 명이 숨진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2006년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몰아낸 군사 쿠데타 이후 거듭된 소요사태로 혼미를 거듭해 온 태국 정국이 유혈 충돌에 따른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태국 정부는 다수의 사상자가 생기자 군과 경찰로 이뤄진 진압부대를 시위 현장에서 철수시키고, 11일 시위대에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군인 30여 명을 인질로 잡은 채 협상에 응할 뜻이 없다고 밝혀 긴박한 대치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밤 태국 방콕 시위를 취재하던 로이터통신 소속 무라모토 히로유키 기자가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는 결국 숨졌다. [방콕 AP=연합뉴스]

충돌은 10일 낮 진압부대가 방콕 도심 곳곳을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면서 비롯됐다. 태국 정부는 7일 내려진 비상사태 선언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정부 건물 점거 등을 계속하자 강제 해산에 돌입했다.2000여 명의 진압부대는 이날 오후 장갑차 등을 동원해 랏차담넌 거리를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3000여 명의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자 군은 물대포와 최루탄·고무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허공을 향해 위협사격을 하던 군이 고무탄을 발사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태국 영자신문 더 네이션 등 현지 언론은 “군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최루탄을 투하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가 군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보도했다. 한 여성 간호사는 “부상자들이 실탄을 맞았는지, 고무탄을 맞았는지 알 수 없다. 여기에 옮겨졌을 때 이미 의식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총리 집무실이 있는 정부 청사에 수류탄으로 추정되는 폭탄 2발이 터져 건물 일부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늦은 밤 시위대가 1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군은 시위대에 밀리기 시작했다. 퇴각 명령을 받은 군은 장갑차를 버리고 달아나기도 했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밤 TV를 통해 사망자와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 뒤 “정부는 정정 불안을 해결할 의무가 있고,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11일에는 군 병력이 더 큰 유혈사태를 우려해 외곽으로 철수하면서 시위는 소강상태를 보였다. 전날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던 랏차담넌 광장은 반정부 시위대의 해방구였다. 현장에 버려진 진압부대의 장갑차 7대는 시위대의 전리품으로 변했다. 장갑차의 무장은 모두 뜯겨져 시위대 수중으로 넘어갔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방콕 일원에 대한 여행 경보를 기존 1단계(여행 유의)에서 2단계(여행 자제)로 상향조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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