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많다, 회항하라” 거부 … 조종사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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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 96명의 목숨을 앗아간 항공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고조사위원회는 조종사 실수나 악천후, 기체 결함이나 기술적 문제 등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고 러 인테르팍스 통신 등이 11일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조종사 실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조종사가 사고가 난 러시아 스몰렌스크의 공항이 아닌 다른 인근 공항으로 회항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악천후 속에 착륙을 강행했다는 증언 때문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기는 공항 주위를 네 차례 선회한 뒤 착륙을 시도했으며, 이후 활주로까지 미처 도달하지 못하고 날개를 나무에 부딪히며 추락했다. 사고 당시 공항 주변에는 가시 거리가 200~500m밖에 안 될 정도의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항공 당국은 안개로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종사가 무리하게 착륙하다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등 폴란드 정부 주요 인사들을 태우고 착륙 중 추락한 폴란드 대통령 특별기 TU-154기의 잔해 모습. [스몰렌스크 AP=연합뉴스]

하지만 기체 결함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사고기 투폴레프(Tu)-154는 러시아에서도 각종 사고가 잦아 승객들로부터 기피 기종 1호로 통한다. 항공사고 정보 사이트인 ‘항공안전네트워크’에 따르면 지금까지 Tu-154와 관련된 사고는 66건으로, 이 가운데 6건이 지난 5년간 발생했다. 1972년부터 상업운항에 들어간 Tu-154는 지금까지 모두 1000여 대가 생산됐다. 카친스키 대통령이 탔던 비행기는 20년 이상 돼 교체가 검토됐으나 예산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BC 방송은 카친스키 대통령이 2008년 말 해외순방 때도 사고기를 탔다 조종장치 등에 문제가 생겨 출발이 지연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위성 TV ‘러시아 투데이(RT)’는 “사고기가 착륙 시도 전부터 연료를 버리고 있었다며 이는 기체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유철종·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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