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생태여성주의의 흐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근대 세계는 인간과 '환경' , 여성과 남성, 제1세계와 비1세계, 공(公)과 사(私) 등 여러 개로 조각나고 분열된 세계다.

이 분열된 세계에서 생태론이 인간과 '환경' 으로 갈라진 세계 내의 인간중심주의에 물음을 제기한 것이라면, 여성주의(페미니즘)는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된 세계 내 남성중심주의에 의문을 제기했다.

생태론과 여성주의가 만난 생태여성주의는 오랫동안 페미니즘이 초월하고자 하였던 여성성, 그것도 여성에게만 주어져 있다는 속성-생물학적 근거로 확인된 것이든 아니든-에 적극적인 의미와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왜냐하면 생태 재난은 이성과 합리성(곧 남성성)에 대한 근대의 신념을 뒤흔들었고, 이의 반작용으로 새로운 사회는 여성성(혹은 여성적 원리)을 사회구성의 원리로 포용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은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를 자신의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자연은 때론 질서와 법칙성을 동반한 우주로, 때로는 혼돈.특이성의 우주로 부각되기도 한다.

전자의 자연을 '양(陽)' 또는 자연의 '강성적' 속성을 지닌 남성성 혹은 남성적 원리라 부른다. 후자의 자연은 '음(陰)' 또는 '연성적' 속성을 지닌 여성적 원리라고 말한다. 전자는 개체의 자기 완결성을, 후자는 비완결성을 특징으로 한다.

근대 이후 분열된 세계에서 이런 점은 더욱 강조됐다. 인간에게는 합리성만이, 자연엔 비합리성과 혼돈만이 남겨졌다. 인간사회에서도 이 합리성은 남성만이 갖고 여성은 비합리성과 히스테리컬한 존재로 남겨진다.

그래서 남성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 한 여성은 예측불허의 감정적 존재일 뿐이다. 이 분열된 세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국한할 때 '여성=자연' 이란 등식이 나온다.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억압과 자연파괴의 원인으로 남성성 지배를 규정하고 그 치유책으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여성성을 강조함으로써 이원화된 세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초기 생태여성주의(마리 델리.수전 그리핀)는 여성성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불변의 것' 으로 생각함으로써 여성중심주의란 또 다른 환원주의적 일원론으로 빠져 버렸다.

이후 이 경향은 문화구성적 입장(캐롤린 머천트.이네스트라 킹.카렌 워렌)에 의해 비판을 받는데, 이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보고 과학 및 문화체계를 분석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반면 사회주의적 생태여성주의는 사회주의와 생태론, 여성주의의 결과물을 종합하려는 입장이다. 시바는 서독의 생태여성주의학자 마리아 미즈와 더불어 둘째와 셋째 흐름의 중간에 속해 있다.

생태여성주의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93년께다. 초기에는 '한국적 상황' 에서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췄으나, 10년의 문턱을 넘어서는 현 시점에서 논의의 방향은 한국 전통사상과의 비판적 접맥에 있다.

하정남(영산대학).김정희(이화여대).허라금(이화여대).김양희(여성개발원) 교수, 주부 이진아씨, 그리고 필자 등이 이 분야에서 글을 쓰고 있다. 현재 몇몇 대학원에는 '여성과 환경' 이란 과목이 개설돼 있다.

문순홍 <대화문화 아카데미 연구원.정치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