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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싸움' 한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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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영 정치부 기자

8일 오전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 회의가 시작되자 원희룡 최고위원은 김형오 사무총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난 4일 상임운영위 회의 때 그가 김 총장에게 거친 말을 한 것을 사과한 것이다.

당시 원 위원은 같은 소장파인 정문헌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진보성향의 남북관계 기본법안(본지 11월 3일자 1, 3면)을 옹호하다 김 총장과 심하게 말다툼을 했고, 급기야 '총장 자격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도 했다.

그래서 원 위원은 8일 "지난번 회의에서 절제되지 못한 발언으로 (총장에게) 인격적인 불편함을 드린 데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자 정형근 중앙위의장은 "술도 깨지 않은, 제정신도 아닌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나"라며 "미친 짓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과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느냐"고 면박을 줬다. 회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으나 박근혜 대표가 "그래도 잘해보겠다는 얘긴데 받아주자"며 수습하고 나서 더 이상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일은 한나라당에서 들끓고 있는 갈등의 단면이다. 국회는 지금 열이틀째 파행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다. 보수파와 개혁파, 영남 중진과 수도권 소장파 등으로 갈려 서로 비판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정 의원은 이날 회의장을 떠나면서 "중진들이 조만간 있을 의총에서 소장파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고 했다.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도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모색했다. 회의에선 "한번 붙어보자"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당의 진로나 주요 현안을 놓고 당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의원들의 성향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갈등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해소하느냐다. 상대를 인정하면서 토론하고 대화하면 그 길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같은 당에 몸담고 있는 의원들이 그걸 못한다면 한나라당의 장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 또 그런 그들이 여당을 향해 편협하다고 손가락질할 자격도 없지 않을까.

박소영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