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수정거부 일본 논리] "해석은 우리 마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본 정부의 대응논리는 '사실과 해석의 분리' 에서 출발한다.

'사실=객관, 해석=주관' 이라는 전제하에서 '교과서는 엄격히 객관적이어야 한다' 는 자기 방어적인 논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일본 문부과학성은 한국이 재수정을 요구한 35개 항목을 사실관계와 해석상의 문제로 구분하고 역사적 사실의 명백한 오류에 대해서만 수정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측은 우선 한국 정부의 재수정 요구 항목을 ▶잘못된 사실의 기술▶역사 사실의 잘못된 해석에 입각한 기술▶위안부 문제 등 교과서에 기술되지 않은 사항이나 기술이 미흡한 사항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주무부서인 문부과학성은 첫째 범주의 오류에 대해서는 수정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임나일본부설 등 한반도 고대사와 관련된 두 곳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주관적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의 기술이 반드시 오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수많은 학설 중 하나에만 들어맞으면 '명백한 오류' 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현행 검정제도상 해석의 문제로 정부가 출판사에 정정을 요구할 수도 없다고 한다.

한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위안부 관련 기술 누락과 관련해서는 "중학교의 학습지도요령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내용으로 지정돼 있는 것 외에는 기술을 요구할 수 없다" 며 재수정 요구를 비켜갔다.

이는 위안부 문제가 중학생들에게 가르치기 부적절하므로 삭제했다는 우익의 자세를 그대로 옹호한 것이다.

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문부과학상은 이같은 결과가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학문적.전문적으로 충분히 정밀검토(精査)한 것" 이라고 변호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본측 논리에는 '내 나라 역사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데 참견하지 말라' 는 뜻이 담겨 있다.

"교과서 검정이 집필자의 역사인식이나 역사관의 시비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는 문부성의 설명이 바로 그런 자세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주관적인 역사관 기술이 객관적인 교과서로 둔갑해 교육현장을 파고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는 꼴이다.

오히려 우익이 황국사관으로 무장한 교과서로 청소년을 교육하는 것을 일본 정부가 공인하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도쿄대 명예교수는 "문부성은 교과서의 기술을 학설에 비춰 오류가 없다고 하지만 학설 적용의 엄밀성이 결여돼 있다" 며 "한국.중국의 비판을 적극 받아들이지 않은 채 당초의 검정결과를 지키려 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