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내달15일까지 전광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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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는 '올해의 작가' 전이 열리고 있다(8월 15일까지).

잔잔한 평화로움 속에서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옛 것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껴볼 수도 있는 전시회다. 까짓 것 느낌을 확대하면 곧 터질 것 같은 폭탄의 힘과 두려움, 느닷없이 고대의 신전에 들어간 듯한 숙연함과 낯섬도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 전광영(57)씨는 이렇게 말한다. "미술관급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 그 결과가 이처럼 강렬하다.

'한지(韓紙)의 마술사' 로 불리는 그는 구미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한지 오브제라는 독특한 기법이 그의 상표다. 삼각형의 스티로폼을 한문이 인쇄된 옛날 책장으로 감싼 뒤 이를 화판에 차곡차곡 붙이는 작업이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화면은 멀리서 보면 조약돌이 깔린 강변처럼 잔잔한 느낌을 주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삼각형들이 서로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튀어나오고 숨어들어가는 정경이 관객의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한자가 인쇄된 입체적 삼각형들은 예스런 정취를 자극하지만 이들이 모인 화면은 극히 현대적으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나이 50세가 될 때까지 화랑에서 초대전 한번 하지 못하면서 무명 작가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1968년 홍익대 서양화과, 71년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그의 추상화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돌파구를 모색하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강원도 홍천의 고향에서 큰아버지의 한약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한약봉지들. 그 자체가 예술이란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한지로 스티로폼을 감싼 오브제 작품을 시작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83년 관훈갤러리에서 한지 오브제로 첫 전시회를 열었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평면회화로 돌아갔지만 물밑에서는 꾸준히 모색을 계속했습니다. " 드디어 51세가 되던 95년에야 박영덕 화랑에서 생애 첫 초대전을 열었다.

이 때부터 운세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 해 미국 LA 국제비엔날레에 출품한 그의 작품을 세계적인 화상들이 대량으로 구입한 것. 이후 98년 시카고 아트페어, 지난해와 올해의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이 거의 매진되는 성과를 이뤘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뒤늦게 평가받기 시작, 드디어 '올해의 작가' 로 선정된 것.

이번 전시엔 1백호에서 1천5백호에 이르는 대작 40여점을 포함, 새로이 세점의 대형 입체작품을 내놨다. 입체작품 중엔 특히 높이 3m의 원기둥 12개와 지름 3m의 대형 공이 눈길을 끈다.

원기둥들은 어두운 조명 속에 고대 신전의 성벽이나 기둥처럼 역사성을 느끼게 하는 장관을 이룬다. 공은 수많은 애환과 분노가 밀집돼 미술관을 날려버릴 폭탄같은 긴장감과 공포를 유발한다. 원기둥과 공의 표면이 모두 한지 스티로폼으로 덮여져 있는 것은 물론이다.

작가는 "화업 40년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올초부터 하루 10시간씩 작업에 매달렸다" 면서 "내가 외국 아트페어 인기작가만이 아니라 국내의 미술관에도 걸맞은 대형작가라는 점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02-2188-6045.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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