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중 '교과서 격돌' 신속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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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8일자 중국 신문들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왜곡 역사 교과서 수정 노력이 미흡한 데 격분,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소식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북경신보(北京晨報)에서 상하이(上海)의 문회보(文匯報)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장차 강경 조치를 취할 것' 이라는 제목을 크게 뽑고 있다.

중국 언론이 한국의 반발을 신속하고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에서 반일(反日)시위가 일어나면 이는 어김없이 중국 신문들의 국제면 주요 뉴스로 취급된다.

그러나 중국 신문 지면을 보면 허전하다. 정작 중요한 중국 당국의 반발을 전하는 보도가 빠지기 일쑤인 탓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신사 참배 움직임 등 한국을 격분시키는 일본의 그릇된 역사 행보가 어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인가. 중국도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 중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정도로 큰 피해를 보았다.

이번 경우도 그렇다. 일본은 왜곡 역사 교과서의 35곳 수정을 요구한 한국에 두곳 정도 수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중국이 요구한 8개 항목 수정 요구도 사실상 묵살하는 것이다.

이에 한국 전체가 들끓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할 뿐 정작 자신의 입장표명은 무척이나 아끼는 모습이다. 주룽지(朱鎔基)총리는 이처럼 모호한 중국의 태도와 관련, 중국을 방문한 한국의 정치인에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중국 인민의 상처가 너무나 깊다. 매우 조심스럽다" 고 말했다 한다.

이해가 가지만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이 일본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싶어하는 게 진짜 이유일 것이다.

미운 일본이지만 경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만큼 참고 있는 것이다. 대신 중국은 한국의 대일 항의 활동을 상세하게 보도, 대리 만족을 취한다. 그러나 중국도 이젠 나서야 할 시점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가져올 폐해는 도저히 경제적 계량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아시아 최고임에도 아시아 리더로 오르지 못한 이유를 경제 건설에 바쁜 중국이지만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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