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인생세탁' 해주려던 재미 사업가 법정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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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에서 징역 2백71년을 선고받은 아들을 한국으로 빼돌린 뒤 '인생 세탁' 을 해주려던 아버지가 한국 법원에서 법정 구속됐다.

아들도 미국 정부에 넘겨져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할 상황이다. '빗나간 부성애' 가 아버지와 아들을 파멸로 몰아간 것이다.

서울지법 박대준(朴大準)판사는 4일 미국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아들을 한국으로 도피시킨 뒤 새 호적을 만들어 준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등)로 불구속 기소된 미국 시민권자 姜모(55)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朴판사는 또 姜씨에게 돈을 받고 호적 등을 위조해준 모 군청 전 직원 南모(57)씨에게도 징역 1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나머지 공무원 두명에게는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朴판사는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사회 질서의 근본인 호적을 위조한 범행인 만큼 죄질이 나쁘다" 고 밝혔다.

1997년 미국 LA에서 갱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 4명을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된 아들(32)은 강도.강간.범죄단체 조직 등 45가지 혐의로 99년 2월 배심원 평결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그러나 미국 법원이 형을 선고하기 직전 姜씨는 보석금 2백20만달러(약 25억원)를 낸 뒤 아들을 한국으로 빼돌렸다. 그러자 미국 법원은 "죄질이 나쁘다" 며 이례적으로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상태(궐석)에서 2백7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姜씨는 결국 99년 11월부터 아들에게 새 호적을 만들어 주는 작업에 나섰다.

미국에서 무역업 등을 해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姜씨는 호적 공무원들을 소개받아 2천여만원을 주었다.

姜씨와 공무원들의 작업(?)끝에 아들은 이모부의 아들 J씨로 둔갑했고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았다.

그러나 아들은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대마초를 피우고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바람에 신분이 들통났다.

미국에서 생활한 사실이 나타났는데도 출입국 기록에는 미국에 간 사실이 없는 것을 수상히 여긴 수사관이 호적위조 사실을 적발해낸 것이다.

아들은 지난 2월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 아들의 운명=미국 법무부는 한국 정부로부터 아들 姜씨 검거 통보를 받은 직후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한국 검찰에 姜씨 인도를 요청했다.

검찰은 姜씨가 한국 법원에서 선고받은 형의 복역을 마치는 오는 10월 미국측에 신병을 넘길 예정이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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