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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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3. 시줏돈과 팁

사찰의 부엌 살림은 대개 공양주(밥하는 직책)와 채공(반찬 만드는 직책)이 맡아 꾸려간다. 밥은 한가지나 반찬은 여러가지인지라 채공이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신도들 대부분은 공양주에게 인사를 차린다. 법당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밥)를 공양주가 불기(佛器)에 소담스럽게 담아 건네주기 때문이다.

공양주였던 나는 신도들이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할 때마다 채공행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며 민망스러워했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여자 신도가 내 손을 끌어당겨 돈을 쥐여 주었다.

"공양주 행자님 수고 많으십니다. 이거 얼마 안되는데, 연필이라도 사 쓰십시오. "

난생 처음 돈을 받았다. 얼떨결에 받았지만 곧 "저는 돈 같은 거 필요없습니다" 며 되돌려주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여신도가 부뚜막에 5백원을 놓고는 달려 나가버렸다.

당시 대학생 하숙비가 2천~3천원 했으니, 5백원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5만원쯤은 될 듯하다. 부뚜막에 놓인 5백원을 바라보는 심정이 참 묘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가 팁을 줬는데, 이제는 내가 팁을 받는 신세라니…. '

돈을 보고 고맙다는 생각보다 왜 '팁' 이라며 자조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당시 심정은 정말 서글펐다. 절에서 실제로 돈을 쓸 일도 없고,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몰라 원주스님을 찾아가 돈을 내밀었다.

"어떤 보살이 팁 5백원 놓고 갔심더. "

원주스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험상궂어졌다. 뭐라고 야단치려는 모습을 하다가 마는 듯 했다. 나는 속으로 "절에 들어와 하도 실수를 많이 해 아닌 말로 '절집 고문관' 으로 낙인찍혀 있나 보군" 하며 섭섭한 마음을 달랬다. 아니나다를까 얼마뒤 성철스님이 호출한다는 전갈이 왔다. "또 야단이 났나 보다" 며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었다. 마음 굳게 먹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큰스님 앞에 꿇어앉았다.

"이놈아, 팁이란 말이 뭐꼬?"

"세속에서 음식점 같은 데서 음식을 먹고 나면 감사하다는 뜻으로 주는 잔돈을 팁이라고 합니다. "

'술집' 이란 단어는 빼고 말그대로 낱말풀이만 했다.

"임마, 그런 게 팁이라는 거 몰라서 묻는 줄 아나. 이 쌍놈아?" 큰스님의 등등한 노기에 아무 말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팁 받는 주제에 꼴 좋다. 이놈아, 그 돈은 팁이 아니라 시줏돈이다 시줏돈. 신도가 니한테 수고했다고 팁 준 것이 아이라, 스님이 도 닦는 데 쓰라고 시주한 돈이라 말이다. 그걸 팁이라고 똑똑한 체하니 저거 언제 속물이 빠질란고…, 허어…참. "

큰스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절에 있으면 더러 신도들이 시주랍시고 너거들한테 돈을 주고 가는 모양인데, 그건 너거 개인 돈이 아니라 사중(寺中) 시주물이데이. 그러니 원주에게 줘 공동으로 써야 하는 것이라. 그리고 시주물 받기를 독화살 피하듯 하라는 옛 스님의 간곡한 말씀이 있으니 앞으로 명심하고 살아야 한데이. 이놈, 오늘 팁 받아서 니 주머니에 넣었다면 당장 내쫓았을 건데…. "

큰스님의 긴 꾸중. 그 마지막 대목을 들으면서 '오늘은 진짜로 운 좋은 날' 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팁이라 생각하고 서러운 마음에 돈을 원주스님에게 갖다주었기 망정이지, 무심코 호주머니에 넣고 내 돈이라 생각했다간 큰일 날 뻔했다. 내가 받은 첫 시줏돈은 그렇게 큰스님의 가르침과 함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큰스님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며 썼던 발원문에서도 시주물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했다.

"시주물은 화살인 듯 피하고, 부귀와 영화는 원수 보듯 하여서…. "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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