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야기] 편집미술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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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문은 '읽는 것' 이었다. 그래서 빼곡히 들어찬 글에 군데군데 사진과 삽화를 곁들인 평면적 편집이 주류였다. 이러다 보니 신문 읽기를 싫어하는 젊은층의 기피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광고주들도 신세대가 구매력을 가진 집단으로 떠오르자 입맛이 까다로워졌다. 인터넷 열풍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신문업계는 신세대에 다가서기 위해 변신을 해야만 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지면 개편 및 연성화 작업이 시작됐다. 가로짜기와 섹션화가 대표적인 시도였다. 본문의 한자 사용도 줄였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정보 전달 방식을 상당 부분 시각화했다는 점이다. 지면 여백을 살리고 다양한 그래픽 기술을 동원해 정보를 압축하고 입체화했다.

이러한 변화 바람은 편집미술 수요를 불렀다. 신문사마다 앞다퉈 그래픽 디자이너를 늘리고 컴퓨터 등 장비를 확충해 편집미술부를 신설했다. 새로운 전문 직업군이 형성된 셈이다.

'지면의 마술사' 로 불리는 편집미술기자. 이들은 미적 감각과 컴퓨터 활용 능력은 기본이고, 기자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그렇다고 신문 그래픽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대학은 없다. 대다수가 디자인이나 회화를 전공한 사람들로 신문사에 들어와 일과 부대끼며 기자적 감각을 익혔다.

이들은 처음 신문업계가 변화 차원에서 필요로 했지만 디지털문화가 자리잡으며 이제 핵심 인력으로 부상했다.

독자들은 습관적으로 기사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시각 자료를 원한다. 취재기자도 복잡한 개념이나 숫자를 표현하려면 분량이 많아지므로 골자만 글로 쓰고 나머지는 그래픽으로 처리하기를 원한다. 편집부 역시 '보는 신문' 을 만들려면 이들과 호흡을 같이해야 한다.

이는 그래픽 제작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취재 부서에서 그래픽 바탕 자료와 함께 기사를 편집부로 넘기면 편집기자는 그래픽에 대해 편집미술기자와 상의한다. 이 과정에서 그래픽의 크기.모양 등이 확정되면 편집미술기자는 기사 내용을 파악한 뒤 작업에 들어간다. 작업은 컴퓨터가 필수다.

신문에서 많이 활용하는 그래픽 종류는 그래프.지도.차트(표).다이어그램.레터링(글자 디자인).일러스트(삽화).합성 사진 등이다. 이 가운데 그래프가 가장 많이 쓰인다. 사건.사고의 장소를 보여주는 데 지도만한 것도 없다. 특히 기사 내용을 그린 일러스트에선 편집미술기자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면 시각화는 디지털시대와 맞물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시각화가 지나치면 신문의 권위를 손상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이태종 기자

※도움말 주신 분=중앙일보 편집미술부 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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