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비난 자초하는 공무원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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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단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은 많이 지쳐 있다. 생존을 위한 숨가쁜 경쟁 속에 국가와 사회가 당면한 갈등과 분쟁에 눈 돌릴 겨를조차 없어 보인다. 분권과 혁신, 균형발전을 지향하는 참여정부의 국정과제들에 대해서도 내 삶과는 무관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모든 현안 과제가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 속에 오로지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국민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고 답답하게 느낄 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 속에 기름값은 오르고, 국가경쟁력은 하락하는 가운데 국회 파행으로 여야 간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진다. 국민이 믿고 의지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광복 후 지난 반세기 동안 기아선상의 빈곤에서 1만달러 국민소득을 달성케 한 견인차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정부였다. 정부를 구성한 직업공무원들의 판단력과 추진력, 헌신적인 자기희생과 대민 봉사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정부 주도의 압축성장이 인권침해와 부(富)의 불평등 배분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일부 공무원들의 탈선이 부패와 비리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정부는 사회변화의 담당자로서, 공무원들은 발전의 리더로서 국민에게 권위와 신뢰를 인정받아 왔다. 지금 정부와 공무원은 '집권에서 분권으로' '관에서 민으로'라는 이전과 다른 국가경영방식을 통해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다시 부여받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정부와 공무원은 또 다른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 공무원 노조설립과 단체교섭을 보장하되 단체행동과 정치활동은 불허하는 공무원노조 정부안이 확정되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오는 15일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의 행정수요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법적.제도적 절차를 신속하게 마련해주지 못함으로써 국민과 정치권 사이에서 공무원들만 언론이나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다양한 견해를 표명하고 논의하는 권리주체로서 공무원노조를 인정할 필요성은 크다. 또 역대 정부에서 추진한 국가발전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할 때 이제라도 공무원들의 권익을 신장시켜 사기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노조결성을 그동안 '사회적 강자'로서 안정된 지위를 누려온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국민 사이에 적지 않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국민을 볼모로 무기한 총파업을 벌인다면 온갖 싸움에 지쳐 있고 경제난에 고통받고 있는 국민으로부터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 틀림없다. 최근 동절기 근무시간을 늘리는 데 항의하는 표시로 점심시간 민원업무를 거부하고 심지어 시민이 직접 뽑은 시장을 개에 비유하는 일 등으로 공무원노조가 국민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공무원노조를 이른 시일 내에 정착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공무원노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아직 생소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 만큼 입법 내용을 놓고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슬기롭고 전략적인 입장에서 원만히 타결해야 한다. 만약 노조가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면 그간 역대 공무원들이 어렵게 쌓아온 자부심과 신뢰를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결국은 국민에게서 싸움판만 벌인다는 지탄을 받게 될지 모른다. 또한 파업은 공직기강 해이와 정부 내 분열과 갈등을 초래해서 이 난국에 국민이 정부에 건 마지막 희망마저 잃게 할 것이다.

힘에 의한 성급한 출발보다는 새로운 노동문화 창출이라는 귀감을 보여주는 것이 공무원 노조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