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몰래 휴대폰' 사생활 침해 위험수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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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몰래 카메라에 이어 몰래 휴대폰이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떠올랐다. 몰래 휴대폰이란 스타를 출연시켜 그들과 친분이 있는 다른 스타나 일반인들의 휴대폰으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몰래' 란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녹화 중임을 속이고, 시청자와 방청객들이 대화 내용을 듣기 때문에 붙인 표현이다.

스타가 즉석에서 전화로 친구를 불러내 우정을 확인한다는 기획 의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KBS2 '야!

한밤에' 는 기획 자체가 몰래 휴대폰을 염두에 둔 프로다. 여기에 지난 26일 방영된 같은 방송사의 '서세원쇼' 에도 몰래 휴대폰이 등장했다.

'서세원쇼' 의 내용은 탤런트 김현주가 탤런트 서유정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함께 바다에 가자" 고 제안한 뒤 반응을 들어보는 것. 서유정의 대답은 "뭐라구□ 나 지금 화장실이야. 응, 5분 있다 전화할께" 였다.

시청자들은 서유정이 가장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고 사적으로나 나눴을 법한 대화를 들은 것이다.

몰래 휴대폰은 연기자들의 사적인 대화와 프로그램의 공적인 성격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들의 대화에 나오는 은어나 "죽이네" 등의 말투는 가끔 도를 넘어 위태로울 정도다.

몰래 휴대폰은 영상만 없을 뿐이지 몰래 카메라와 똑같다. 훔쳐보기 대신 엿듣기로 재미를 얻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프로들이 훔쳐보기나 엿듣기라는 인간의 음험한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엿들으면 엿들을수록 더 자극적인 대화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사적인 대화가 여과없이 전파를 타는 상황에 대해 제작진은 다시 한번 '방송의 역할이 무엇인가' 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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