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바다' 전운 감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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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2면

'지난 5년 동안의 동지 관계가 깨지자마자 결투가 시작되었다' .

소프트웨어 업계 최강자 마이크로소프트(MS)와 3천만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 아메리카온라인(AOL)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96년부터 제휴관계를 맺어온 두 회사는 올 1월 종료된 계약 연장건에 관해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달 18일 결별을 선언했다.

오는 10월 25일 출시되는 MS의 새로운 운영체제 '윈도 XP' 에 AOL 소프트웨어를 집어 넣는 문제를 '없었던 일' 로 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일은 향후 인터넷시장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중대한 사건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왜 결별했나〓5년 동안의 제휴에서 MS는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AOL의 회원들이 이용토록 하는 실리를 누렸다. AOL은 자사의 소프트웨어가 윈도 체제로 통합되는 이득을 봤다.

하지만 이런 밀월은 MS가 윈도XP에 성능이 향상된 MSN 메신저와 윈도미디어플레이어를 포함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이 부문 모두 AOL이 선점하고 있는 분야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인 MSN메신저는 이 부문 1위인 AOL의 'AIM' 과 부딪치고, 음악파일 청취 프로그램인 윈도미디어 플레이어는 AOL과 제휴사인 리얼네트웍스의 리얼플레이어와 경쟁한다.

이번 협상에서 MS는 AOL에 대해 자사의 윈도 미디어플레이어를 함께 사용해 줄 것과, AIM을 자사의 MSN메신저와 호환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반면 AOL로서는 MS에 이 부문 길을 터줬다가 익스플로러의 공세에 밀려간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단호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넷스케이프사는 바로 AOL 그룹 산하사기도 하다.

여기에 AOL이 공들여온 인터넷 전화사업에 MS가 윈도XP를 통해 뛰어들기로 한 것도 갈등요인으로 작용했다.

◇ 두 공룡, 인터넷시장에서 맞붙다〓양자의 갈등은 본질적으로는 차세대 인터넷시장 주도권을 노린 견제가 숨어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MS는 올들어 언제 어디서나 모든 기기를 이용해 인터넷 정보를 이용한다는 내용의 '닷넷' 전략을 발표한 뒤, 자사 포털서비스인 MSN에 대한 투자 확대 등 인터넷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AOL이 최근 온라인 서비스 월정액을 24달러로 9% 인상하자 MS는 즉각 자사 요금이 22달러로 더 싸다는 점을 강조하며 광고공세를 펴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인터넷 사업권 획득을 발표했다. AOL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AOL은 고객수에서 5백만명의 MSN에 여섯배 규모이면서도 MS의 추격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타임워너와 합병한 장점을 이용, 음악 등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타임워너 인수과정에서 얻은 전국 케이블 TV망을 이용한 케이블 모뎀방식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인터랙티브 TV를 이용한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MS도 AOL이 소유한 케이블망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경계를 표시한 바 있다. AOL은 이밖에도 MS 견제를 위해 지난달 27일 인스턴트 메시징 분야에서 AT&T와이어리스와의 제휴를 발표했으며, MS가 올 가을 내놓는 게임기 X박스를 겨냥해 경쟁제품인 플레이스테이션2의 제작사 소니와도 손을 잡았다.

◇ 법정 다툼도 벌어질 듯〓두 회사의 경쟁은 의외로 법정에서 승부가 날 가능성도 있다. 벌써부터 윈도XP의 출시를 앞두고 소프트웨어사들은 윈도XP가 각종 프로그램을 끼워팔기(번들링)한다면서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AOL 관계자의 말을 인용, 두 회사가 제휴기간 동안에는 상대방을 제소하지 않겠다는 이면 합의를 했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결별을 선언한 이상 이제 AOL이 MS를 상대로 한 소송의 선두에 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미국 항소법원이 MS의 분할을 명령한 1심 판결을 기각함으로써 MS는 한껏 고무돼 있다. 전세계의 정보 네트워크를 놓고 싸우는 두 공룡의 대결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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