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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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2. 육조단경 설법

헉헉거리며 성철스님의 뒤를 따라 백련암에 올라오면서도 설법의 음성은 귓속을 떠나지 않았다. 큰스님의 법문은 육조(六祖), 즉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 선종(禪宗)의 법통을 이은 여섯번째 조사(祖師)인 혜능(慧能.638-713)의 가르침에 관한 것이었다.

흔히 '육조 혜능' 이라 부르는데, 그가 남긴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 '육조단경(六祖壇經)' 이다. '경(經)' 이란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인데,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서 '경' 이라 불리는 것은 육조단경이 유일하다. 그만큼 혜능의 가르침이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 무렵 성철스님이 마당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달려갔다.

"큰스님, 오늘 하신 육조단경 법문 잘 들었습니다. 꼭 저를 위해 법문하신 듯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

좋은 말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마디 했는데, 큰스님이 갑자기 큰 눈을 더 크게 뜨시며 한참을 쏘아보셨다. 아니나 다를까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내가 어데 법문할 데가 없어서 니같은 행자놈을 위해 법문했겠나? 자슥, 참 건방진 놈이네. "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서 물러가라" 는 듯 손사레를 치셨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공연히 해 큰스님을 노엽게 했다 싶어 몹시 송구스러웠다. 그런데 저녁예불을 마치고 나니 "큰스님께서 찾으신다" 는 전갈이 왔다.

"또 얼마나 혼이 나려나. "

저녁 무렵 있었던 일이 생각나 덜컥 겁부터 났다. 방으로 찾아가 삼배를 하고 공손하게 앉았다.

"니 오늘 내 법문 듣고 어떻다 했제?"

영문도 모르고, 따로 꾸며서 할 말도 없어서 "꼭 저를 위해 법문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고 반복했다. 큰스님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놈 참 맹랑하네. 그렇게 생각한 무슨 이유가 있을 것 아이가? 그 이유를 말해 보란 말이야! 이 맹추야. "

더 움찔해져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큰스님이 한마디 더 붙였다.

"나는 뭐 큰 '앎' 이라도 있어서 그런 말 하는 줄 알았더니 아무 것도 아이네. 나가봐!"

방을 나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무슨 다른 것을 느낀 게 있어 엉뚱한 소리를 했다고 큰스님이 나름대로 기대와 짐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불러 확인하려는데 대답이 영 싱거우니 실망한 것이다.

이러니 큰스님께 드리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철없이 많이 여쭈었는데, 이러 저리 받히기만 하니 마음놓고 질문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보름마다 큰스님을 따라 큰절에 내려가 설법을 들었다. 큰스님은 겨우내 육조단경을 설법했다. 큰스님은 육조의 가르침을 매우 중시했으며, 큰스님의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도 육조의 가르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언젠가 육조단경에 대해 큰스님께 물었다. 육조가 천한 출신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설법을 남겼는지 항상 궁금했던 터였다.

"이런저런 책을 보면 혜능대사가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스님으로 묘사돼 있는데, 정말 무식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

지금도 큰스님의 가르침이 쟁쟁하다.

"육조 혜능대사가 무식했다는 것은 정설이데이. 무식했지만 마음을 깨치니 부처님 진리에 환해지고[宗通], 법문을 자유자재로 하는 언변을 얻었다[說通]고 안하나. 참선 공부는 열심히 정진해 '마음을 깨치느냐, 못깨치느냐' 하는 거기에 있지, 알고 모름에 있는 게 아이다. 섣불리 아는 것이 오히려 참선공부에는 큰 방해가 된다. 알았나?"

당시에는 그저 "예, 예"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기는 힘들었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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