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전환사채 청약으로 본 현대건설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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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6~27일 현대건설은 시장에서 의미심장한 성적표를 받았다. 일반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현대건설 전환사채(CB) 청약을 받은 결과 가까스로 발행목표 금액(7천5백억원)을 채운 것이다. 개인이 청약한 분량은 1백31억원에 그쳤고, 나머지 7천3백69억원은 법인이 가져갔다.

◇ 차가운 시장 반응=이번에 발행된 현대건설 CB는 신용보증기금이 원리금 상환을 보장하며 연 7.56%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CB의 만기(2년10개월)와 비슷한 기간을 은행에 맡기면 연 6.3%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 보증채치고는 이자가 쏠쏠한 편이다. 게다가 만기 1개월 전까지 주가가 낮아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은 미전환 사채는 현대건설 채권단이 전량 매입하는 조건이다.

결국 정부(신보)와 은행이 '책임지고 손해는 안 보도록 해주겠다' 고 선언했는데도 시장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신영증권 장득수 조사부장은 "현대건설 CB 청약이 부진한 것은 건설업 경기가 좋지 않은 점도 있지만 현대건설이 아직까지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평가했다.

◇ 채권단도 CB 인수=당초 현대건설과 주간사는 개인과 법인에 50%씩 물량을 배정할 생각이었는데 개인의 입질이 예상보다 적어 법인으로 나머지 물량을 돌렸다. 그나마 법인이 가져간 물량 가운데 75%나 되는 5천5백26억원어치는 ▶외환은행 2천억원▶산업은행 1천5백29억원▶조흥은행 8백76억원▶국민은행 6백94억원▶농협 4백27억원 등 현대건설의 채권은행들이 분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은행은 현대건설 CB가 수익률 측면에서 괜찮은 상품이어서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좋은 상품이라면 왜 고객 자산을 굴리는 은행신탁이 아닌 자기 돈 주머니인 은행계정에서 샀는지 의문이다. 이를 두고 채권단이 사실상 신규 자금을 지원한 셈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은 CB를 인수하기로 했던 8개 은행 중 신한.하나.한빛은행은 청약에 참가하지 않았다.

◇ 이 빠진 출자전환=27일 마감된 현대건설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우려했던 대로 일부 기관이 불참했다. 당초 목표액이었던 2조1천5백억원에서 2천5백74억원이 부족한 1조8천9백26억원만이 납입됐다.

출자전환에는 교보생명.동양생명 등 10개 기관이 불참해 목표보다 1천79억원이 적었으며, 하나은행.동양생명.삼성생명 등 14개 기관이 불참한 유상증자는 1천4백95억원이 부족했다.

결국 현대건설은 당초 출자전환.유상증자.CB 발행을 통해 조달하려던 2조9천억원이 아닌 2조6천4백26억원만을 마련하게 됐다.

채권단이 숨가쁘게 출자전환.유상증자의 고개를 넘다 보니 CB를 추가 인수하는 등 채권단의 리스크도 더 커졌다. 채권단이 힘겹게 밀어붙인 현대건설 출자전환의 성공 여부는 이제 심현영 사장 체제의 현대건설로 공이 넘어갔다.

◇ 현대건설은 회생 자신=현대건설은 CB 청약이 부진한 이유로 청약기간이 짧아 홍보가 제대로 안됐으며, 공모 직전에 하나은행이 미전환 CB 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인식이 나빠진 탓이라고 진단했다.

김창헌 현대건설 부사장은 "채권단 일부가 출자전환에 참여하지 않아 6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3백%를 넘을 것 같다" 면서도 "심현영 사장이 취임한 뒤 임직원들이 열의를 갖고 일하고 있어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3백% 이내로 낮출 자신이 있다" 고 밝혔다.

金부사장은 "채권단이 대출금리를 깎아준데다 이번 출자전환.유상증자로 부채 규모가 2조1천억원 정도 줄어들어 금리 부담이 크게 줄었다" 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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