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벼랑끝에 선 김정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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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으로부터 한숨을 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천지개벽' 이라고 표현한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을 개성.남포에 건설하는 데 국제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인민의 고통을 담보로 핵과 미사일을 내밀며 미국과 원점에서 다시 협상하는 수고는 없었을 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방북을 추진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반대에 부닥쳐 평양행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이런 반전(反轉)의 가장 큰 배경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건 예정된 일이었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그렇게 매달릴 이유도 없다. 결국 외교전문가들은 북한의 대응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외교' 가 낳은 결과물이란 지적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서둘렀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호의를 갖고 북한과 대화했다. 임기 내 한반도 평화정착을 업적으로 남기겠다는 클린턴의 의욕일 수도 있다.

그럴수록 북한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 끝까지 카드를 아꼈다. 더 큰 '선물' 을 기대했다. 이런 북한의 곡예는 벼랑을 넘어 버렸다.

그래서 북한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미 합의한 것을 놓고 더 많은 것을 내놓지 않고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로 돌아가기가 어렵게 되지 않았나.

金위원장은 다시 모험하고 있다. 자신의 서울 답방을 비롯해 남북관계도 묶어버렸다. 남한 정부가 나서 미국을 움직이라는 압력인 셈이다.

김일성(金日成)전 주석 시절에도 몇번 남북화해가 시도됐다. '7.4 남북공동성명' (1972년)과 '남북기본합의서' (91년)를 만들어냈다. 94년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제의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손익 계산에 철저한 북한은 이내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애초부터 金주석 부자의 대화 의도가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다음 정권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거나, 북한 내부 사정에 여유가 생겨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7.4 공동성명과 비슷한 시기에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했던 중국의 변화를 보면 "전투마다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전쟁에서 지고 있다" 는 외교전문가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동독도 서독으로부터 작은 이익을 받아내는 협상에서 번번이 성공했지만 근본적인 생존전략에는 실패했다.

이 전문가는 "金위원장이 미국을 압박하는 방법은 두 가지" 라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남북대화마저 끊어 남한 정부를 애타게 하는 것이 그 첫번째다. 다른 한 가지는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 특히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의 명분을 없애는 것이다.

金대통령이 답방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후자를 택하라는 메시지다. 그런데도 金위원장의 선택은 첫번째 길인 것으로 보인다.

벼랑을 따라가다 클린턴을 놓쳐버린 金위원장이 金대통령마저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김진국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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