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천안함 침몰] 수색 도운 뒤 침몰한 금양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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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배 그만 탄다고 했는데….”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98금양호 선원 김종평(55)씨의 빈소에서 동거녀 이삼임(56)씨는 멍하니 영정 사진만 바라봤다. 무뚝뚝하고 투박하던 전형적인 뱃사람. 하지만 이씨에게만은 다정한 연인이었다. 먼 항해에서 돌아올 때면 작은 선물이라도 뭐든 사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들어오면 다른 일 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3일 오후 송도가족사랑병원에 차려진 김씨의 빈소는 한산했다. 이씨를 비롯한 지인 3~4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이혼한 전 부인과 사이에 아들을 하나 뒀지만 오래전 미국으로 입양돼 상주도 없었다. 이 배가 소속된 금양수산 직원들이 “우리가 도리를 해야 한다”며 겨우 빈소를 차렸다. 이씨는 “돈 모아서 미국에 있는 아들 보러 간다고 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빈소에는 해군과 해경 관계자 3~4명만 잠시 들렀고 이춘재 인천해양경찰서장이 보낸 조화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무리 (실종자)수색 중이라지만 나랏일 도와주다 이렇게 된 건데 너무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4일 오후 1시쯤 같은 병원으로 옮겨진 람방 누르카요(36·인도네시아)의 빈소에는 금양수산 직원 몇몇만 눈에 띄었다. 윤도헌 금양수산 부장은 “평소 참 성실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안타깝다”며 침통해했다.

인천시 중구 연안동 사무소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대기실. 이곳에선 20여 명의 가족이 모여 해경의 늑장 대응에 분노를 쏟아냈다. 이용상(46)씨 동생 이명숙(39·여)씨는 선주 박갑서(57)씨에게 “도대체 누구 명령으로 수색작업에 들어간 거냐”며 “거기는 저인망 어선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따져 물었다. 허석희(33)씨의 작은아버지 허용진(59)씨는 “해경에서 선장 번호를 몰라서 회사에 물어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며 “왜 해경에서 아무도 안 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한 가족들에 대한 인천해양경찰서의 대응은 변명 일색이었다. 해경은 4일 가족을 대상으로 사고 경위와 수색 상황을 설명하며 “97호가 안 보인다고 확인만 해줬어도 저희가 출동했을 것”이라고 말해 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98금양호(99t)에 탔다가 실종된 선원 9명 중 김종평씨와 람방 누르카요의 시신은 지난 3일 발견됐다. 98금양호는 2일 천안함 수색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침몰했다. 해경은 98금양호가 캄보디아 국적 타이요 1호(1472t)와 충돌한 것으로 보고 이 배를 대청도로 예인해 조사 중이다.

인천=임주리·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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