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직장여성 당구 동호인 늘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당구장이 변했다. 컴컴한 지하실, 자욱한 담배연기. 널부러진 자장면 그릇과 심심치 않게 싸움 구경까지 할 수 있었던 모습은 이제는 옛말이다.

한동안 서울 압구정동.신촌 등 카페골목의 세련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포켓볼이 선풍적으로 유행하더니 외환위기 이후 거품이 빠지고 직장여성.주부 등 평범한 여성의 여가문화로 자리잡았다.

주고객이던 청소년들의 발길이 PC방으로 옮겨지면서 당구장 수가 부쩍 줄어들었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좋아진 것도 여성 당구동호인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

1998방콕아시안게임 시범종목이었던 당구가 내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0개가 걸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당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 근처 한국당구아카데미(02-598-3877)는 약 5백평 규모에 당구대 55대와 강의실 등을 설치,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금연이며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특별활동 수업을 할 정도로 깔끔하다.

이곳을 찾는 남성 대부분은 실전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동호인들이다. 정민웅(37.서울 중구 행당동)씨는 "당구게임을 할 때마다 계속 져서 친구들 몰래 배우고 있다. 아직 점수는 그대로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당구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3개월 후 친구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 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여성은 여가선용이 주류를 이룬다. 1시간에 1㎞정도 걷는 효과에다 유연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이 여성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부이자 포켓볼 강사인 장민화(47.서울 은평구 갈현동)씨는 "당구대가 있는 술집에 갔다가 남편이 '여자는 당구치면 안된다' 는 말에 화가 나서 당구를 시작했다" 며 "당구 점수가 2백을 넘자 나만의 기술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고 자랑했다.

주부 박명화(42.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공의 각도를 계산하다가 오랫동안 멈춰있던 두뇌의 컴퓨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다칠 염려가 없고 골프처럼 큰 돈이 들지 않는 것이 장점" 이라고 말했다.

당구가 레저스포츠로 자리잡아 가면서 각 구청 사회복지관.언론사 문화센터.스포츠클럽 등 당구를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늘고 있다. 용인대 사회체육학과에는 당구 전공이, 경북 성덕대에는 당구학과가 개설될 정도로 이미지도 많이 달라졌다.

"당구공 소리와 함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실력을 늘려 남자친구에게 도전하겠다" 는 직장인 노혜원(25.서울 광진구 구의동)씨의 말에서 당구의 새로운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성호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